34. 여사인 거인에게 답함(1)
받아보니 평소에 공부를 함을 쉬지 않는다고 하니 공부가 익으면 화두를 쳐서 깨뜨릴 것입니다.
이른 바 공부라는 것은 세간의 잡다한 일들을 헤아리는 마음을 <건시궐(乾屎橛)>에 돌이켜 두어 정식(情識)으로 하여금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흙이나 나무로 만든 인형과 같아 어둡고 답답함을 느껴 붙잡을만한 근거가 없을 때가 곧 좋은 소식입니다.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고 또한 앞과 뒤를 헤아려 어느 때 깨달을까 라고도 하지 마십시오.
만약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면 곧 삿된 길에 떨어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 법은 사량, 분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르셨으니 이해하면 곧 화가 생깁니다.
사량, 분별로 이해할 수 없음을 아는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다만 하나의 여거인이니 곧 머리를 굴려 따지지 마십시오.
이 앞에 융례(隆禮)에게 답한 편지에서 선병(禪病)을 다 말했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결코 한 법도 사람에게 주신 것이 없고 다만 본인이 스스로 믿고 스스로 수긍하며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닫게 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다만 다른 사람이 입으로 말한 것만 취했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을 잘못되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은 반드시 언설상(言說相)을 여의었으며 심연상(心緣相)을 여의었으며 문자상(文字相)을 여의었으니 모든 상(相)을 떠난 것을 아는 자도 또한 다만 여거인이며 저 죽은 후에 단멸한가 단멸하지 않은가를 의심함도 또한 다만 여거인이며 나에게 (대혜스님) 바로 끊음을 지시해 달라는 것을 구하는 것도 또한 다만 여거인이며 평상시 하루 종일 혹 성내고 혹 기뻐하며 혹 사량, 분별하며 혹 혼침하고 혹 마음이 들뜸도 모두가 다만 여거인이니 다만 이 여거인이 가지가지 기특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며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과 함께 더불어 적멸대해탈광명(寂滅大解脫光明)의 바다 가운데 노닐어 세간 출세간의 일을 성취 할 수 있건만 다만 여거인이 믿지 못할 뿐입니다.
만약 믿을진대 청컨대 이 주석(註釋)에 의거하여 삼매(三昧)에 드십시오.
홀연 삼매로부터 일어나 식심(識心)을 잊는다면 곧 깨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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