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왕장원 성석에게 답함(1)

 

그대가 어린 나이에 자립하여 곧 모든 사람의 정상에 있으되 부귀함에 얽힌바 되지 않았으니 오랜 겁에 원력을 지닌바 아니면 어찌 이러한 것에(부귀한데 있으면서 부귀함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 일대사에 간절하고 절실하여 한 순간도 물러섬이 없으며 확고한 믿음이 있으며 확고한 뜻을 갖추었으니 이것은 어찌 얕은 장부가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오직 이 하나의 일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하셨으니 청컨대 채찍질하여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세간의 일은 다만 이러하니 선성(先聖)이 어찌 이르지 않았습니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는데 듣는 것은 무슨 도리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찌 엿봄을 용납하리요! 다시 불도(佛道)를 ‘나의 도는 일이관지(하나로써 꿴다)’에다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모름지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깨달을지니 설(說)한 것은 결국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믿으면 설(說)할 수 없고 형용할 수 없더라도 도리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만 설하고 형용하여 보여 주어도 도리어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함이 두려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리켜 증상만인(增上慢人)이라고 했으며 또한 반야를 비방하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또한 대망어(大妄語)를 짓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또한 불혜명(佛慧命)을 끊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천불(千佛)이 세상에 오시더라도 참회가 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화두를 투과하면 이러한 말들은 도리어 망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곧 망어라는 견해를 내지 마십시오.

여거인(呂居仁)에게서 근래 연이어 두 번의 편지를 받으니 편지 가운데 모두 이르기를 여름에 융례(隆禮)에게 답한 편지를 항상 곁에 두고 얻는 것으로 목표를 삼는다고 하며 또한 일찍이 그대에게 적어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근세의 귀공자로 그와 같은 사람은 마치 우담발화(優曇波羅)가 삼천년에 한 번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근래 산에 있으면서 매번 그대와 더불어 이러한 이야기를 해보니 그대의 안목의 정동(定動)을 보니 구분구리(九分九釐)를 알아차려 보고 다만 한번 와지함이 모자랄 뿐입니다.

만약 한번 와지함을 얻는다면 유교가 곧 불교요, 불교가 곧 유교이며, 승(僧)이 곧 속(俗)이요, 속이 곧 승이며, 범부가 곧 성인이요, 성인이 곧 범부이며, 내가 곧 너이며, 네가 곧 나이며, 하늘이 곧 땅이며, 땅이 곧 하늘이며, 파도가 곧 물이며, 물이 곧 파도이며, 유락(酥酪)과 제호(醍醐)를 섞어 한 맛을 이루며 단지 쟁반, 비녀, 팔찌를 녹여 한 덩어리의 금(金)이 되게 함이 나에게 있지 다른 사람에게는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면 나의 지휘로 말미암게 되니 이른 바 내가 법왕(法王)이 되어 법에 자재(自在)하니 득실시비(得失是非)에 어찌 걸림이 있겠습니까?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계는 무구노자(無垢老子)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믿으며 비록 믿는다 해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이미 그르고(邪) 옳은가(正)를 가릴 수 있으나 다만 손에 넣지 못했을 뿐입니다.

손에 넣는 때는 늙음과 젊음을 가리지 않고 지혜롭고 어리석음에 있지 않습니다.

마치 범천왕위(梵位)를 가지고 바로 범부에게 줌과 같아 다시 계급차례가 없습니다.

영가(永嘉)스님께서 이르신바 "한 번 뜀에 곧장 여래(如來)의 지위에 들어간다."고 함이 이것입니다.

오로지 들으십시오. 결코 당신은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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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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