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하운사 지굉에게 답함
편지를 받아보니 도와 계합하면 하늘과 땅이 같은 곳이며 뜻이 다른 즉 얼굴을 마주 대하더라도 초(楚)나라와 월(越)나라 같이 멀다고 하니 이 말은 진실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전하지 못하는 오묘한 것입니다.
그대가 뜻을 내어 나에게 편지를 쓰고자 할 때 글을 쓰고 종이를 털기 전에 이미 두 손으로 분부(인가)했습니다.
또한 어찌 굳게 참아 구경까지 기다려 다른 날을 기다리겠습니까!
이 도리는 오직 증득한 자라야 비로소 묵묵히 서로 계합하니 속인과 더불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연평(延平)은 곧 민령(閩嶺)의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대가 스스로 조복(調伏)하여 역순의 문빗장(화두)에 움직인바 되지 아니하였으니 곧 크게 해탈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체의 화두를 굴려 일상생활에 자유자재하여 그를 얽매여 끌거나 이끌어 묶을 수 없습니다.
만약 즉시 곧 이렇게 깨달으면 자연히 털끝만큼도 나에게 장애됨이 없습니다.
고덕이 말씀하시되 “부처님께서 설한 모든 법은 일체의 마음을 제도하기 위함이니 내가 일체의 마음이 없으면 일체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셨으며 또한 나융(懶融)선사는 “바로 마음 쓸 때가 마음 씀이 없을 때니 자세히 말함은 이름과 모양이 번거롭고 바로 말함은 번거로움이 없다.
무심이 바로 마음 쓰는 것이요, 항상 쓰되 마음 씀이 없는 것이다.
지금 말한 무심처가 유심과 다르지 않다.” 하셨으니 다만 나융스님만 이와 같지 않고 나와 그대도 또한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 속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 잡아내어 보이기가 어려우니 앞서 말한 묵묵히 서로 계합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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