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왕내한 언장에게 답함(1)

 

받아보니 문을 닫고 면벽(面壁)한다고 하니 이것은 마음을 쉬는 좋은 약입니다.

만약 다시 옛 종이를 연구한다면 반드시 정식(藏識:8식) 중에 시작도 없는 때로부터 생사의 근본의 싹을 끌어 일으켜서 선근(善根)의 어려움을 만들며 도를 장애하는 어려움을 만듦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마음에 쉼을 얻고 또한 마음을 쉬고는 과거의 일에 선(善), 악(惡), 역(逆), 순(順) 같은 것은 모두 생각하지 말며, 현재의 일은 없앨 수 있는 대로 없애되 한 칼에 두 동강내어 머뭇거리고자 하지 않으면 미래의 일은 자연 이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음에 망령되이 과거의 법을 취하지 말며, 또한 미래의 일에 집착하지 말며, 현재에 머무르는 바 없으면 삼세가 모두 공적함을 깨달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또한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없다>고 한 것을 들고 청컨대 쓸데없이 사량하는 마음을 잡아 무(無)자에 돌이켜 두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문득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 한 생각 깨뜨릴 수 있다면 곧 삼세를 요달한 곳입니다.

깨달았을 때는 안배(安排)할 수 없으며, 계교할 수 없으며, 인증(引證)할 수도 없으니 왜냐하면 요달한 곳에는 안배(安排)도 용납하지 않고, 계교도 용납하지 않으며, 인증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증하고 계교 안배하더라도 요달한 것과는 전혀 교섭함이 없습니다.

다만 놓아 걸림이 없게 하여 선과 악을 모두 사량하지 말며 또한 뜻을 두지도 말고 또한 망회(忘懷)하지도 마십시오.

뜻을 두면 곧 산란해지고 망회(忘懷)하면 혼침이 있게 됩니다.

뜻을 두거나 망회 하지 않으면 선(善)이 선이 아니요, 악(惡)이 악이 아닙니다.

만약 이와 같이 요달한다면 생사의 마(魔)가 어느 곳을 엿 볼 수 있겠습니까?

일개 왕언장(汪彦章)의 명성(名聲)이 천하에 가득하니 평생에 안배하고 계교하고 인증한 것은 문장(文章)이며 명예(名譽), 관직(官職)입니다.

만년(晩年)에 인(因)을 거두고 과(果)를 맺는 곳에 어느 것이 실체입니까?

한없이 쓸데없는 것만 행했으니 어느 한 글귀에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명예가 이미 드러났으니 덕을 숨기고 빛을 감추는 것과는 차이가 얼마입니까?

관직이 이미 대양제(大兩制)에 이르렀으니 벼슬에 급제하지 않았을 때와 차이가 얼마입니까? 지금 이미 70에 가깝습니다. 그대의 기량(技倆)을 다 발휘했으니 무엇을 바랍니까?

죽음이 닥쳐오면 어떻게 타협하겠습니까?

무상(無常)한 살귀(殺鬼)가 한 순간도 쉬지 않습니다.

설봉진각(雪峯眞覺)선사께서 이르시되 “시간이 너무 빨라 잠깐이다. 뜬세상 어찌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겠는가 재를 넘은 때가 32세더니 민중(閩中)에 들어오니 이미 40이로다. 다른 이의 잘못은 자주 들추지 말고 자기의 허물을 도리어 마땅히 재빨리 없애라. 성(城)에 가득한 벼슬아치에게 알리나니 염라대왕은 금어(金魚) 찬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셨으니 고인이 입이 아프도록 간절히 말씀하심은 무슨 일을 위함이겠습니까?

세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배고프고 추운 것에 핍박을 받아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몸이 조금 따뜻하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곧 끝나니 다만 이 두 가지 일 밖에는 없습니다. 생사(生死)의 마(魔)가 도리어 번뇌(煩惱)롭게 하지 못하니 부귀한 자와 비교하면 가볍고 무거움이 크게 같지 않습니다.

부귀를 받은 사람들은 몸이 이미 항상 따뜻하고 뱃속이 항상 배불러서 이미 이 두 가지 것에 핍박을 받지 않지만은 말할 수 없이 일이 많아 형용 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항상 생사의 마의 그물 가운데에 있어 그로 말미암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다만 숙세의 선근이 있는 자는 막 보아 꿰뚫고 알아 버립니다.

선성(先聖)이 말씀하시되 “문득 (생각이) 일어남은 병이요, 이어지지 않음이 약이니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깨달음이 늦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란 깨달음입니다.

그는 항상 깨달아 있기 때문에 대각(大覺)이라고 부르며 또한 각왕(覺王)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모두 범부(凡夫)에서부터 지어 나왔습니다.

그도 이미 장부니 내가 어찌 그렇지 않으리요! 백년 세월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생각 생각을 마치 머리에 불을 끄는 것과 같이 하십시오.

좋은 일을 행함도 도리어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생각 생각이 번뇌 가운데에 있어 깨닫지 못함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두렵고 두렵습니다. 근래 여거인(呂居仁)의 사월 초에 보낸 편지를 받아보니 증숙하(曾叔夏)와 유언래(劉彦禮)가 죽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거인이 교유(사귐)하는 중에 때때로 다시 한 두 사람 빠져나가니 바로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는 요사이 이 일을 매우 간절하게 하면서 또한 문득 생각을 돌이킴이 조금 늦은 것으로 후회한다고 하거늘 근래에 편지를 써서 답장하여 단지 마지막에 잘못됨을 아는 한 마음으로 바른 것으로 삼고 (생각을 돌이킴이) 더디고 빠름은 묻지 마십시오.

그릇된 줄을 아는 한 마음은 곧 부처를 이루고 조사가 되는 기본이며 마(魔)의 그물을 부수는 날카로운 무기이며 생사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원하건대 그대는 단지 이와 같이 공부를 해나가십시오.

지어나가는 공부가 점점 익으면 온종일 가운데 곧 힘을 든 것을 느낄 것입니다.

힘을 든 것을 느꼈을 때에 놓아 느슨하게 하지 말고 오로지 힘을 든 곳에서 공부를 지어 나가십시오.

공부를 지어감과 이렇게 힘이 들린 곳이 또한 알지 못하는 어느 때는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이 무(無)자를 들지언정 얻고 얻지 못함은 관여하지 마십시오. 지극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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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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