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왕내한 언장에게 답함(2)
편지를 받아보니 문을 닫고 사귐을 쉬며 세간의 일을 소홀히 하고 오직 아침, 저녁으로 내가 지난번에 언급한 화두를 든다고 하니 매우 좋고 좋습니다.
이미 이러한 마음을 갖추었다면 마땅히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아야 합니다.
만약 스스로 퇴굴심(退屈心)을 내어 근성이 보잘것없고 낮다고 하면서 다시 들어가는 곳을 구한다면 바로 함원전(含元殿) 속에서 장안이 어느 곳에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바로 (화두를) 들 때에 누가 드는 것이며, 근성이 보잘것없고 낮다함을 아는 것은 또한 누구이며, 들 곳(깨달아 드는 곳)을 구함은 누구입니까?
내가 구업(口業)을 아끼지 않고 분명히 거사를 위해 설하겠습니다.
다만 하나의 왕언장이지 다시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왕언장만 있다면 다시 어디에서 화두를 들며 근성이 보잘것없고 낮다함을 알며 들어갈 곳을 구함을 얻겠습니까?
마땅히 모두가 왕언장의 그림자이지 전혀 다른 왕언장이 간여하는 일이 아님을 아십시오.
만약 진실한 왕언장은 근성이 반드시 열등하지 않으며 들어갈 곳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주인공을 믿는다면 결코 허다한 수고로움을 소비하지 마십시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앙산(仰山)스님께 여쭈되 “선종은 단박에 깨닫는 것입니다. 필경에 입문(入門)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앙산스님께서 이르시되 “이 뜻은 지극히 어렵다 만약 선종의 문하에 지혜와 근기가 뛰어나면 한 번 듣고 모든 것을 깨달아 대총지(大總持)를 얻나니 이러한 근기의 사람은 얻기가 어렵다. 대개 근기와 지혜가 미약하고 낮아 그러한 까닭으로 고덕(古德)께서 이르시되 만약 선정(禪靜)에 안주하지 않고 생각을 고요히 하지 않으면 이 속에 이르러서는 모두 마땅히 아득하여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말하되 “이 격식을 제외하고는 도리어 다른 방편이 있어 학인들로 하여금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이르시되 “별도로 있다 없다 하면 너의 마음으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는 것이니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너는 어디 사람인고?” “유주 사람입니다.” 앙산스님이 이르시되 “너는 또한 그 곳을 생각하는가?” “항상 생각납니다.” 앙산스님이 이르시되 “그 곳의 누대(樓臺)와 수풀 동산에 사람과 말이 아울러 찼으니 너는 생각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하라. 또한 허다한 것들이 있는가?” “제가 이 곳에 이르러서는 일체 있음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앙산스님이 이르시되 “너의 견해가 오히려 경계에 있다. 신위(信位)는 옳으나 인위(人位)는 옳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노파심(老婆心)이 간절하여 마땅히 다시 설명을 달 것이니 인위(人位)는 곧 왕언장이요 신위(信位)는 곧 근성이 낮음을 아는 것과 들어갈 곳을 구하는 것이니 만약 화두를 들 때에 드는 곳에서 여전히 왕언장인가를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이 속에 이르러서는 그 사이 털끝도 용납하지 않으니 만약 생각에 머물고 근기에 머문다면 그림자의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청컨대 정신을 차리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기억해 보니 이전에 답장한 편지 중에 일찍이 써서 보내되 마음을 쉼을 얻어 또한 마음을 쉬고는 과거의 일에 선이니 악이니 역순을 모두 생각하지 말며 현재의 일은 없앨 수 있는한 없애되 한 칼에 두 동강내어 의심하고 머뭇거리지 않는다면 미래의 일은 자연히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찍이 이와 같이 엿보아 잡아가고(화두를 들고)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곧 가장 힘을 들어 공부하는 곳입니다. 지극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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