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왕내한 언장에게 답함(3)
편지를 받으니 다섯째 아들이 병으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니 아버지와 자식의 정(情)은 오랜 생(生)에 은애습기(恩愛習氣)가 흘러 모인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일을(자식이 병듦) 만나면 옳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 가운데 가지가지가 모두 헛된 환영이어서 한가지도 진실함이 없으니 청컨대 행주좌와에 항상 이렇게 관(觀)하면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 점점 녹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번뇌할 때에 자세히 헤아려 궁구(窮究)해 따지되 ‘어느 곳을 따라 일어나는가?’ 만약 일어나는 곳을 궁구할 수 없으면 ‘현재 번뇌하는 것은 또한 어느 곳을 따라 왔는가?’ 번뇌할 때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헛된 것인가, 진실한 것인가?’ 계속 궁구해 가면 마음이 갈 곳이 없으니 사량하고자 하면 다만 사량하고 울고 싶거든 다만 우십시오.
울다가 사량해 가다가 의식 중에 허다한 은애의 습기를 털어 다할 때 자연히 얼음이 녹아 물로 돌아감과 같아서 나의 본래 번뇌도 없고 근심 기쁨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세간에 들어와 있으면서 세간을 벗어남과 다름이 없다면 세간법이 곧 불법이요, 불법이 곧 세간법입니다.
아버지와 자식의 천성(天性)은 하나이니 만약 자식이 죽었는데 아버지가 번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으며, 만약 아버지가 죽었는데 자식이 번뇌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도리어 옳겠습니까?
만약 억지로 참아 울 때에 또한 울지 않고 생각날 때에 또한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은 다만 천리(天理)를 거역하고 천성(天性)을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질러 메아리를 그치게 하고 기름을 부어 불을 끄려함입니다.
번뇌 할 때에는 모두가 본분사에서 벗어난 일이 아니니 또한 벗어난 일이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마십시오.
영가(永嘉)스님께서는 “무명(無明)의 실다운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요, 환(幻)과 같이 변하는 헛된 몸뚱이가 곧 법신(法身)이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참된 말이며 속이거나 망령된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량하거나 번뇌하고자 하려 해도 또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관하는 자는 이름하여 바른 관(觀)이라고 하고 만약 다르게 관하는 자는 이름하여 삿된 관(觀)이라고 합니다.
삿되고 바름을 구분하지 못했다면 곧 힘을 잘 쓸지니 이것이 나의 확고한 뜻이니 지혜 없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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