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록 해제(百丈錄解題)


백장스님의 어록은 일찍부터 독립된 본이 있었다. 「조당집

(祖堂集)」에 의하면,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

려 있다"고 하였고. 또 "문도 신행(神行)과 범운(梵雲)이 법어

를 결집(結集)하여 어본(語本)을 편집하였는데, 오늘날 어본이

후학들에게 유행되고 있다"고 한 탑명(塔銘)의 내용에서 문도

들이 모은 어록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수 있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어록(語錄)과 광록(廣錄)을

구분하여 싣고 있는데, 광록은 다른 어록과는 달리 긴 자설

(自說)의 법문형식으로서 교학적인 배경이 두텁다. 법문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고, 그 중에서도 대

승입도돈오법은 스님의 대승법문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겠

다.

스님의 제자로서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듯이 위산(위

山)과 황벽(黃檗) 두 스님이 중요하다. 위산스님은 그 제자인

앙산(仰山)스님과 함께 위앙종(위仰宗)의 종조가 되고, 황벽스

님은 임제(臨濟)스님을 배출하여 임제종의 원류가 된다. 즉 5

가 종파에서 최초의 두 파가 백장스님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백장스님 이후, 선원(禪院)은 생활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율원(律院)등에 속해 있던 선원이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상당(上堂)하여 공개적으로 설법하는

설법당(說法堂)이 마련 되었다. 또한 대중운력이나 10가지

소임 등 선원생활을 규율하는 청규(淸規)가 백장스님에서 부

터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과

대중운력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폐불 속에서도 선문(禪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러하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

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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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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