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념(無念)
"위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읍니
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
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
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眞念]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邪念]이요 바른 생각[正念]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六念)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非念]이다'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邪念]이
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眞念]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無念法) 가운데 머
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乘)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 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
(六根)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
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
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
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
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 왜냐하
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我人心)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
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
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
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
처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2. 돈오(頓悟)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망념을
없애버리고 영원히 아인심(我人心)을 끊어서 필경 공적하여
곧 부처님과 같게 되어 다름이 없는 까닭에 범부가 성인이라
고 하느니라.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삼계를 뛰어나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아
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
어간다'고 하였느니라.
돈오를 닦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좇아
다녀서 백천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
과 같느니라."
3. 진여(眞如)와 무심(無心)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는 것
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
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읍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
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가지가 따라오고 하나를 미혹하면 만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
이 오도(悟道)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라'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
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功業)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아니하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
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일체처에 무심함
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곧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
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
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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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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