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유통판 언충에게 답함(2)
그대가 고요히 앉아서 공부한지가 몇 년이 되었습니다.
눈을 뜨고 사물을 대하는 것에 마음이 편안함을 얻었습니까? 만약 편안하지 않다면 이것은 고요히 앉아서 한 공부가 힘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오래하여도 오히려 힘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지름길로 힘을 얻는 곳을 구해야만 비로소 평소에 허다하게 한 공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일 것입니다.
평소에 고요히 앉아서 하는 공부는 오로지 (마음의) 시끄러운 것을 막아 물리치고자 함이니 바로 시끄러운 때에 도리어 시끄러운 것에 자신의 마음이 어지럽게 되면 도리어 평소에 고요히 앉아 공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이 도리는 너무나 가까이 있어 멀어도 자신의 눈동자 속을 벗어나지 않아 눈을 뜨면 곧 보이고 눈을 감은 곳에도 모자람이 없으며 입을 열면 곧 말하고 입을 닫는 곳에 또한 자연히 드러나 있으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십만팔천리(十萬八千里)나 어긋나 버리고 맙니다.
바로 당신이 마음을 쓰는 곳이 없어야지 이것이 가장 힘을 드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대개 힘을 써서 구하고자하니 그것을 구한다면 점점 잃게 되고 향할수록 더욱 어긋나 버리게 되니 어찌 얻고 잃음을 따지는 알음알이에 떨어져 있으면서 시끄러운 곳에서는 잃는 것이 많고 고요한 곳에서는 잃는 것이 적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고요한 곳에 20여년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시험삼아 조금이라도 힘을 얻은 것을 가져온다면 옳을 것이나 만약 말뚝처럼 오래 앉아 있는 것을 가지고 고요히 앉아 하는 공부에 힘을 얻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시끄러운 곳에서는 잃어버립니까? 지금 힘을 든 것을 얻고 고요함과 시끄러운 것에 한결같기를 원한다면 다만 조주의 <무(無)>자를 뚫어십시오.
문득 뚫으면 비로소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서로 방해되지 않음을 알 것이며 또한 힘을 써서 지탱(고요함에 집착하여 고요한 곳에만 있고자 하는 것)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지탱함이 없다는 견해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참선의길잡이 > 대혜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26. 장승상 덕원에게 답함 (41) | 2024.05.07 |
---|---|
25. 진국태 부인에게 답함 (38) | 2024.05.07 |
23. 유통판 언충에게 답함(1) (43) | 2024.05.06 |
22. 유보학 언수에게 답함 (32) | 2024.05.06 |
21. 허사리 수원에게 답함(2) (49) | 2024.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