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허사리 수원에게 답함(2)
그대가 바른 믿음을 갖추고 바른 뜻을 세웠으니 이것이 곧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기본입니다.
내가 그로 인해(바른 믿음 바른 뜻을 세웠기 때문에) 담연(湛然)으로 그대의 도호(道號)로 이름하니 물의 맑음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추어 마음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간, 출세간의 일이 담연(湛然)을 벗어나지 않아 털끝도 샘이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도장으로 모든 곳에 찍어 정(定)하면 옳은 것도 없으며, 옳지 않은 것도 없어 하나하나가 해탈(解脫)이며 낱낱이 밝고 오묘하며 낱낱이 진실(眞實)이게 될 것입니다.
쓸 때도 또한 담연하며 쓰지 않을 때도 또한 담연일 것입니다.
조사가 이르시되 “다만 마음에 분별 계교가 있으면 스스로 보고 헤아림이 다 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심식(心識)이 고요하여 조금이라도 마음을 움직임이 없다면 이것을 정각(正覺)이라고 이름합니다.
깨달아 이미 바르면 생활하는 가운데 색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냄새를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법을 알며, 행주좌와와 어묵동정이 담연(湛然) 아님이 없으며 또한 스스로 전도된 생각을 내지 않아 생각이 있거나 없거나간에 모두 청정할 것입니다.
이미 청정함을 얻었다면 움직일 때는 담연의 용(用)을 드러내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담연의 체(體)에 돌아가니 체용이 비록 다르나 담연한 것은 하나입니다.
마치 전단나무를 쪼개도 조각조각이 다 전단인 것과 같습니다.
근래 한 부류의 알지 못하는 무리는 자기의 근본도 실답지 못하면서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모으고 고요히 앉아 숨소리를 죽이라고 가르치니 이런 무리들은 이름하자면 진실로 불쌍하다 하겠습니다.
청컨대 그대는 다만 이와 같이 공부를 지으십시오.
내가 비록 그대에게 이와 같이 지시하지만 진실로 부득이해서입니다.
만약 진실로 이렇게 공부를 짓는 일이 있다면 곧 그대를 오염시키는 것일 것입니다.
이 마음은 실체가 없는데 어찌 억지로 거두어 둘 수가 있으며 거두어 두고자하나 어느 곳에다 두겠습니까?
이미 둘 곳이 없다면 시절(時節)도 없으며 고금(古今)도 없고 범부와 성인도 없고 잃음도 없고 고요함과 시끄러움도 없고 생(生)과 사(死)도 없으며 또한 담연이란 이름도 없으며 담연의 체도 없으며 또한 담연의 용도 없으며 또한 이렇게 담연을 이야기하는 자도 없으며 또한 이렇게 담연을 설한 것을 받는 자도 없으리니 만약 이와 같이 보아 깨치면 나도 또한 이러한 호를 지음도 헛되지 않고 그대도 또한 이 호를 받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니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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