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부추밀 계신에게 답함(3)
편지를 보니 처음에 잠깐 고요히 앉아보니 공부가 또한 만족스러웠다하고 또 이르되 감히 고요함에 집착하는 견해는 망령되이 일으키지 않는다고 하니 부처님께서 이르신바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그의 귀를 막고 높은 소리로 크게 부르짖고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기를 구함과 같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스스로 장애와 어려움을 만들 따름입니다.
만약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하면 평상시 하루 종일 어둡고 흐릿함이 마치 혼이 흩어지지 않은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무엇하러 부질없이 공부를 하면서 고요하고 시끄러움을 따지는 것을 찾겠습니까?
열반회상(涅槃會上)에 광액도아(廣額屠兒)가 짐승 잡는 칼을 놓아버리고는 문득 성불했다 하니 그가 어찌 고요한 가운데 공부를 했겠습니까? 그가 어찌 초심(初心)이 아니겠습니까!
그대가 이를 보고 결정코 그렇지 않다고 여겨 마음에 차별을 두어 ‘그는 옛 부처님께서 시현(示現: 부처님께서 영험을 나타낸 일)하신 것이지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역량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이 본다면 곧 스스로 수승함을 믿지 아니하고 하등한 사람이라고 달갑게 여기는 것입니다.
나의 이 (불법)문중은 초기(초심)와 늦게 배움을 논하지 않고 또한 구참과 선배(먼저 불문에 들어온 사람)도 묻지 않습니다.
만약 참으로 고요함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생사심을 깨뜨려야 합니다.
애써서 공부를 하지 아니하여도 생사심이 부수어지면 곧 고요하게 될 것입니다.
옛 성인께서 말씀하신바 적정방편(寂靜方便)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세의 삿된 스승들 스스로가 옛 성인들의 방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그대가 만약 나를 믿는다면 시험 삼아 시끄러운 곳에서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화두를 간하되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말하지 말지니 바로 마음이 시끄러운 때에 마음껏 화두를 들고 느끼어 보십시오.
또한 고요함을 느낍니까? 또한 힘을 얻은 것을 느낍니까?
만약 힘을 얻음을 느낀다면 곧 마땅히 놓아버리지 말고 고요히 앉고자 할 때에 다만 한 가닥의 향을 사르고 고요히 앉되 앉을 때에 혼침(昏沈) 하지 말며 또한 마음이 들뜨게도(掉擧) 하지 말지니 혼침과 마음이 들뜸은 옛 성인들께서 꾸짖은 것입니다.
고요히 앉을 때에 문득 이 두 가지 병(혼침과 도거)이 나타남을 느끼면 다만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화두를 들면 힘써 물리치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안정될 것입니다.
날이 오래되고 달이 깊어져서 막 힘 들린 것을 느낌이 곧 힘을 얻는 곳입니다.
또한 애써 고요히 앉아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대로 곧 공부입니다.
이참정이 근래에 천남(泉南)에 있으면서 처음 서로 만났을 때 내가 묵조(黙照)의 삿된 선(禪)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고 하며 힘써 배척함을 보고 그가 처음에는 불평하여 의심과 분노가 반반이더니 곧장 내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화두에 송(頌)하는 것을 듣고 홀연히 무명(無明)을 쳐부수고는 한 번 웃는 가운데에 모든 화두에 의심이 없어졌으니 비로소 내가 입을 열어 나의 쓸개를 보인 것이 조금도 속임이 없었으며 또한 아상(我相)를 다투지 아니함을 믿고는 곧 나에게 참회하였습니다.
이참정이 현재 그곳에 있으니 청컨대 시험삼아 그에게 나(부추밀)의 공부방법이 옳은가하고 물어보십시오.
도겸(道謙)상좌가 이미 복당(福唐)에 갔으니 이미 그곳에 도착했습니까? 이 사람은 참선을 하면서 고통을 맛본 것이 많으니 또한 일찍이 10여년을 묵조선에 들어갔다가 근래에 비로소 안락처를 얻었습니다.
서로 볼 때에 그에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한번 물어 보십시오.
일찍이 방랑한 사람이기 때문에 선객(禪客)을 매우 아낄 것이니 아마도 반드시 지성(至誠)으로 말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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