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증시랑에게 답함(3)

 

방(龐)거사께서 “다만 바라건대 모든 있는 바를 비우고 절대로 없는 바를 채우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니 다만 이 두 구절을 깨달으면 일생참학(一生參學)의 일을 마치게 됩니다. 오늘날 일종의 머리 깎은 외도(外道)가 자기의 안목(眼目)도 밝지 못하면서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죽은 갈단(獦狚)처럼 쉬어라.’ 하니 만약 이와 같이 쉴진대 천불(千佛)이 세상에 오신다 해도 쉴 수가 없고 점점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미혹하고 답답하게 할뿐입니다.

또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현상을 낱낱이 세밀하게 관찰하라.’‘일어나는 생각을 잊고 묵묵히 비추어 보라’ 하니 비추어보거나 세밀히 관찰하는 것이 점점 더욱 미혹하고 답답해져서 깨달을 기약이 없나니, 다만 조사의 방편을 잃고 잘못 사람을 지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한결같이 헛되이 태어났다가 쓸데없이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깨달음)에는 관여하지 말고 오로지 이렇게 쉬어가라. 쉬어가다 보면 정념(情念: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리니 이러한 때에 이르면 어둡고 무지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성역역(惺惺歷歷)하게 된다.’ 이러한 것은 다시 독으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나는 평소에 이러한 무리를 보면 공부하는 사람으로 여겨 대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미 스스로의 눈도 밝지 못하면서 다만 책에 쓰인 말을 가지고 본보기로 삼아 사람들을 가르치니 이러한 것이 어떻게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요?

만약 이러한 것을 믿는다면 영겁토록 참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도 평소에 사람들로 하여금 좌선하되 고요한 곳에서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병에 대해서 약을 주는 것이지 실제로 이렇게 사람들에게 지시한 것은 없습니다.

보지 못했습니까? 황벽(黃檗)스님께서는 “우리 선종은 위로부터 이어져온 이래로 일찍이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이나 알음알이를 구하지 말고 다만 도를 배우라고 이른다.”고 말씀하셨으니 일찍이 사람을 제접하는 말씀이었으나 도(道)라는 것도 또한 배울 수 없는 것이니 마음에 도를 배우겠다는 것이 존재한다면 도리어 완전히 도에 미혹하게 될 것입니다.

도에는 방향과 장소가 없으니 이름하여 대승심(大乘心)이라고 하니 이 마음은 안과 밖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니 진실로 방향과 장소가 없으니 첫째로 지식이나 알음알이를 내지 마십시오. 다만 당신에게 말하노니 지금의 정량(妄情과思量)처로써 도를 삼아야 할지니 정량(情量)이 만약 다 없어진다면 마음에 방향과 장소가 없으니 이 도는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 없는 것인데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해 미혹함이 마음속에 있어 그런 까닭으로 모든 부처님께서 출현하시어 이 일을 말씀하셨으니 중생들이 깨닫지 못할까 두려워하시어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이름에 집착하여 알음알이를 내지 마십시오.

앞에서 말한 눈먼 사람이 잘못 사람에게 지시함은 모두가 고기의 눈을 알아 밝은 구슬이라고 하니 이름에 집착하여 알음알이를 낸 사람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현상을 낱낱이 세밀하게 관찰하라함은 이것은 눈앞의 감각을 고집하여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고, 쉬어서 감각도 지식도 없는 것에 이르면 마치 흙, 나무, 기와, 돌과도 비슷하니 이러한 때는 어두워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함은 또한 방편으로 묶인 것을 풀어 주는 말을 잘못 알아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경계를 따라 비추어 보되 나쁜 생각이 나타나게 하지 말라하니 이것은 또한 8식(八識)을 알아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요, 사람들로 하여금 다만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자재하고 마음이 움직임은 신경 쓰지 말라.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짐은 본래 실체가 아니니 만약 집착하여 실제라고 한다면 생사의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하니 이것은 또한 자연(自然)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는 사상을 고집하여 구경법(究竟法)으로 삼아 알음알이를 내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모든 병은 도를 배우는 사람의 일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눈먼 종사(宗師)의 잘못 지시한데 연유한 것입니다.

그대는 청정하게 스스로 처신하면서 도에 대한 한 조각 진실하고 견고한 마음이 있으니 공부가 순일하다 순일하지 못하다 관여하지 말고 다만 옛 조사들의 말씀에 대해서 다만 탑을 쌓는 것과 같이하여서 한층 쌓고 또 한층 쌓는 잘못된 공부를 한다면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한 곳에다 마음을 두면 얻지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축착합착(築著磕著)하여 문득 깨달아 버릴 것입니다.

<한 생각을 일으킴이 오히려 허물이 있습니까? 수미산이라.>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놓아버려라.>

이 속에서 의심이 부서지지 않았다면 오로지 이 속에서 참구할지언정 달리 사람에게 지시하여 줄 불법은 없습니다.

만약 믿지 못한다면 마음대로 강북 강남의 선지식에게 물어서 한번 의심하고 의심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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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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