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시랑 천유에게 답함
(묻는 글을 실음)
제가 근래에 장사(長沙)에 있으면서 원오(圓悟)선사의 편지를 받아보니 스님을 일컬어 만년(晩年)에 서로 만났으나 얻은 바가 매우 기특하고 훌륭하다고 하셨습니다.
거듭 그 말씀을 생각한지가 지금 8년이 되었습니다만 직접 법문을 듣지 못한 것을 항상 한탄하면서 오직 간절히 사모하여 우러러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발심(發心)하여 선지식을 찾아뵙고 이 일(일대사인연)을 여쭈었으나 20살 이후에 혼인과 벼슬에 끄달림을 당하여 공부가 순일(純一)하지 못하고 이럭저럭 지금의 늙음에 이르렀습니다.
아직까지 들은 바 없어 항상 스스로 탄식하고 부끄럽게 여기지만 뜻을 세워 발원(發願)함은 진실로 얕은 지견(知見)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만이려니와 깨닫는다면 반드시 바로 옛 조사스님들께서 몸소 증득(證得)한 곳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크게 쉬는 곳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이 마음은 비록 일찍이 한 생각도 물러남이 없었으나 스스로 공부가 마침내 순일하지 못함을 느꼈으니 뜻과 원은 크나 역량(力量)이 작다하겠습니다.
저번에 원오선사께 절실하게 간청을 드렸더니 스님께서 법어(法語) 6가지로써 보여주셨는데 그 처음은 바로 이 일을 보여주시고 뒤에 운문(雲門)선사의 수미산(須彌山)과, 조주(趙州)선사의 방하착(放下著)의 두 가지 공안을 들어서 저로 하여금 둔한 공부에 착수하라고 하시면서 항상 스스로 화두를 성성하게 들어라, 오래오래 하다보면 반드시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하신 노파심이 간절함이 이와 같건마는 어찌 둔하고 막힘이 이다지도 심합니까?
지금 다행히 가정의 세속인연을 다 마치고 한가하게 있으면서 다른 일없어 바로 간절히 스스로 채찍질하여 처음 세운 뜻을 갚고 있습니다만 다만 직접 가까이서 가르침을 얻지 못한 것이 한스럽습니다.
일생의 허물을 이미 낱낱이 아뢰니 반드시 이 마음을 훤히 비춰 주실 수 있으시니, 바라옵건대 자세하게 경책(警策)하고 제시(提示)하여 주십시오.
평소에 마땅히 어떻게 공부를 해야 거의 다른 길을 밟지 않고 바로 본분자리와 서로 계합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말씀을 드림도 허물이 또한 적지 않으나 오로지 정성을 바칠 따름입니다.
스스로 숨기기가 어려우니 진실로 불쌍하다 하겠습니다. 지극히 여쭙니다.
'참선의길잡이 > 대혜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증시랑에게 답함(4) (51) | 2024.05.01 |
---|---|
4. 증시랑에게 답함(3) (48) | 2024.05.01 |
3. 증시랑에게 답함(2) (41) | 2024.05.01 |
2. 증시랑에게 답함(1) (49) | 2024.04.30 |
대혜선사 행장 (51) | 2024.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