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조계문하생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구경에 무명을 얻으십니까?"
"무명이란 바로 모든 부처님들께서 도를 얻으신 자리이니라. 그러
므로 연기법이 바로 도량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한 티끌 한 빛깔
이 그대로가 가이 없는 진리의 성품이니라. 발을 들었다 놓는 것이
모두 도량을 여의지 않나니, 도량이란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니라. 내
너에게 말하노니, 다만 이 얻은 바 없는 자리를 도량에 앉아 있음이
라고 하느니라."
"무명이란 밝음입니까, 어두움입니까?"
"밝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움도 아니다. 밝음과 어두움이란 서
로 바뀌어서 갈아드는 법이니라. 그렇다고 무명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다. 밝지 않음이 곧 본래의 밝음이어서, 밝지도 않고 어둡
지도 않느니라. 이 한마디 말이 온천하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사
리불과 같아서, 모두 함께 헤아려 사량할지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
량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를 허공을 벗어
나 너희들이 언어 문자로는 따져볼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량과 같은 삼천대천 세계에 갑자기 어떤 보살이 출현하여, 한 번
걸터앉으매 모든 삼천대천 세계를 걸터앉아버린다 해도, 보현보살의
한 털구멍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지금 무슨 본래의 이치
를 가지고서 그것을 배우려고 하겠느냐?"
"말씀대로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둘이 없
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가지만, 방편에는 여러 문들이 있다'고 말씀
하십니까?"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무명의 참 성
품이니,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니라. 또 방편에 여러 문
이 있다는 뜻은, 성문들은 무명이 생겼다 없어진다고 보며, 연각들은
다만 무명이 없어지는 것만을 보고 무명이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여
생각마다 적멸을 증득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종
일 생겨나나 그 남이 없음을 보시고, 또 그것이 종일 없어지지만 그
없어짐이 없는 것임을 보아서,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음이 곧 대승
의 최고 과(果)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과(果)가 가득 차면 깨달
음이 원만하고, 꽃이 피면 세계가 일어나서, 한발짝 드니 그대로가
부처요, 한발짝 내리니 그대로가 중생이도다'고 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부르는 것은 이(理)의 측면에
도 구족하시고, 사(事)의 측면에도 구족하시며, 나아가 중생에도 구
족하시고 나고 죽음에도 구족하시며, 모든 것에 다 구족하시니 구족
하시므로 구할 것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지금 생각생각에 부처는 배
우려 하면서 중생을 싫어하니, 만약 중생을 싫어하면 이것이야말로
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똥치는 그릇을 들고 희
론의 똥을 제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만 너희들에게
옛부터 알음알이로 배워서 알려는 마음과 도를 보려는 마음을 없애
려고 그러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마음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나
면 희론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며, 또한 똥을 내다버린다고 하느니라.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마음을 내지않게 하시는 것이다. 또 마음
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절로 큰 지혜가 완성된다는 것은, 부처니 중
생이니 하는 분별을 결코 내지 않아서 일체를 모두 분별치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 조계의 문하에 들어오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옛부터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을 조금은 행
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때문에 행함 없음[無行]이 나의 법문(法門)이
니라. 오로지 한 마음의 문일 따름이니, 모든 사람이 이 문에 이르러
서는, 모두 감히 들어오지는 못하나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다만 얻은 사람이 적을 뿐이니, 얻은 자는 곧 부처이니라.
편히 하여라."

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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