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 스님
사람의 한평생 가운데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란 지극히 적다. 우선 머리 속이 갖가지 생각들로 얽히고 설켜 있으니 혼돈이 지극하고, 말과 행동으로 지은 업들이 ‘나’의 앞길을 막고 있으니 마음먹은 대로 살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걱정들.... 자기 걱정, 가족 걱정, 남에 대한 걱정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기 마련이요, 돈과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움을 당하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모든 욕심을 남김없이 비우고 사는 것 또한 용이하지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온 버릇 때문에 비우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비우지도 못하고 내 마음대로도 되지 않을 때, 그리고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도 ‘나’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가만히 앉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오히려 현재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업(業)만큼은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꼭 이루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부처님이나 큰 힘을 지닌 보살님께서 세운 행원력(行願力), ‘고통받는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는 행원력에 의지하여 간절히 소원을 비는 기도 법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기도인의 자세
우리 불자들은 기도를 매우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불교의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해야 한다’ 또는 ‘자기 자신을 위한 소원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등의 말을 자주 듣기까지 한다.
물론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급한 소원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을 비우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또, 일체 중생을 위한 기도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해탈과 관련이 있으니, 따지고 보면 자신을 위하지 않는 기도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기도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쉽게 말해, 기도는 비는 것이다. “도와 달라”고 비는 것이 기도이다.
어떤 사람이든 힘이 있고 자신이 있을 때는 신심(信心), 곧 자기 자신의 의지로써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약하고 자신이 없을 때는 의지할 것이 있어야 한다. 곧 신앙(信仰)이 필요한 것이다.
기도는 신앙이다. 신심이 아니라 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를 할 때는 매달려야 한다. 내 마음대로도 남의 도움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불보살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지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특별히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하고자 한다.
1) 간절한 기도
기도를 할 때는 지극한 마음, 간절한 마음 하나면 족하다. 복잡한 형식이나 고차원적인 생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간절하게 부처님을 생각하고 지극한 마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해 보자.
간절하다는 것은 마음을 한결같이 갖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소원이 있기 마련이고, 그 소원을 이룩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뭉쳐야 한다.
“잘 되게 하소서. 잘 되게 해주소서. 잘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마음을 하나로 모아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신라의 원효 스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불 생각을 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져도 먹을 생각을 하지 말지어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얼어죽든 굶어 죽든 상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밥 생각, 불 생각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를 하다 보면 처음 얼마 동안은 마음이 잘 모이지만, 조금 지나면 갖가지 잡념들이 더욱 많이 일어나게 된다. 몸이 고단하다는 생각, 내가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공연한 기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러한 생각들이 기도를 망쳐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억지로 없애려 한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더욱더 일어나는 것이 번뇌 망상의 속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회의가 생기고 잡념이 일어나는 고비를 만나면, 거듭 소원을 곧게 세우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들게 되고, 잠깐이라도 깊은 기도 삼매에 빠져들면 불보살의 가피력을 입어 소원을 남김없이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북 영천에 과수원을 경영하는 50대 초반의 처사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지금부터 수년 전, 그 처사는 갑자기 심한 통증을 느끼며 굴신조차 할 수 없는 허리병에 걸리고 말았다. 처사는 들것에 실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았고,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다니며 침도 맞고 한약도 달여 먹었지만 전혀 효험이 없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비구니 스님이 된 처사의 여동생이 찾아왔고, 여동생은 관세음보살 기도 할 것을 청하였다.
“오라버니, 관세음보살을 지성껏 부르면 죽을병도 능히 고칩니다. 그까짓 허리병 하나 못 고치겠습니까? 누워서 특별히 할 일도 없을 것이니, ‘노시는 입에 염불한다’고 부지런히 관세음보살을 외우십시오.”
얼마 동안 처사는 동생이 시키는 대로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그러나 깊은 믿음이 없었던 그는 열심히 외우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영영 불구자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염불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져 버렸다.
‘관세음보살을 외운다고 어찌 허리 병이 나을까 보냐? 나도 참 바보지. 일은커녕 걷지도 못하고 방구석에만 누워 있어야 하는 이내 신세...... 아, 차라리 콱 죽어 버리자.’
그는 가족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일도 못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다. 먹고 죽어 버리게 농약 가져오너라. 빨리 가져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가족들을 향해 ‘농약 먹고 죽어 버리겠다’고 소리치자, 견디다 못한 가족들은 다시 동생 비구니 스님을 청하였다.
“오라버니,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간절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세요. 틀림없이 허리가 나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관세음보살이 어떻게 고쳐? 여러 소리 말고 농약이나 가져와! 콱 죽어 버리게.”
“그렇게 농약 먹고 발광하다 죽고 싶소?”
“그래, 이제 사는 것도 지겹다. 빨리 농약이나 가져오너라.”
헛간으로 뛰어간 동생 비구니는 농약 한 바가지를 푹 퍼 가지고 와서 오라버니의 입 앞에 갖다 대며 소리 쳤다.
“자, 입을 벌려요. 내가 부어 넣어줄테니까.”
“......”
“뭘 망설여요? ‘아’ 하라는데......”
처사는 여동생의 당돌한 행동에 깜짝 놀라 입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농약을 먹지 않으려거든 지금부터 관세음보살을 부지런히 외우세요. 부지런히 외워 꿈속에서도 관세음보살을 외우게 되면, 묘한 약이 생기기도 하고 용한 의사를 만나 병이 금방 낫게 될 것입니다.”
여동생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처사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은 불렀다. 소리내어 관세음보살을 찾기가 쑥스러워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7일째 되던 날 저녁, 처사는 문득 꿈을 꾸었다.
처사가 사는 동네에 의사 한 명과 세 명의 간호사가 갑자기 찾아와서, ‘악성 전염병이 돌고 있으니 모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며 동네 사람 모두를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처사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의사 앞으로 가자, 의사는 다른 사람은 거들떠볼 생각도 않고 처사를 끌어당겨 청진기로 진찰을 하는 것이었다.
“보통 예방주사로는 당신 병을 고칠 수가 없소, 저 침대 위에 누우시오.”
처사가 침대 위에 눕기 바쁘게 의사는 맥주병 만한 큰 주사기를 가져와서 인정 사정을 두지 않고 허리에 꽉 찌르는 것이었다.
“아야!”
처사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고, 꿈에서 깨어나서 보니 자신이 벌떡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서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나 불편한 곳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구제 불능의 허리 병이 완전히 나아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처사가 조급증과 무기력 속에 잠겼을 때 영영 기도를 그만두었다면 어찌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을 수 있었겠는가? 여동생 스님의 적절한 방편으로 처사는 관세음보살을 찾는 기도를 마음속으로라도 할 수 있었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허리 병이 완쾌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수많은 생각들을 잘 단속하여야 한다. 오히려 잡생각이 일어날 때일수록 마음을 곧게 다져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나를 속일 불보살은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더욱 부지런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불자들이여, 요긴하게 마음에 새겨라. 기도 성취의 비결이 ‘간절 절(切)’이 한 글자 속에 있음을!
물체의 형상이 길면 그림자도 길고 소리가 크면 메아리도 크듯이, 내가 드리는 정성이 크면 클수록 불보살의 감응(感應)도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간절 切’이 한 그림자가 온몸에 사무치도록 간절하게 기도하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삼매에 빠져들어 반드시 불보살의 가피력을 크게 입게 된다.
부디 지극한 마음, 간절하고 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당부 드린다.
2) 요행수를 바라지 말라
둘째는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자력(自力)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불자들 중에는 ‘기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런데 그 까닭이 기도 법을 몰라서라기 보다는 마음의 자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곧 기도를 하면서 요행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수십 년을 절에 다닌 신도조차 요행수를 바라며 기도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도에는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다.
태양은 어느 곳에나 평등하게 빛을 준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 빛을 받는 물체의 모습과 비례한다. 같은 태양 빛을 받는 사물일지라도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가 바르고, 형상이 길면 그림자가 길며, 형상이 짧으면 그림자가 짧은 법이다. 이처럼 불 보살의 광명 정대한 자비는 언제나 중생들의 정성과 함께 할 뿐,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는 결코 함께 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생들은 요행수를 바라고 기도를 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측신(厠神)에게 기도하면 재수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변소에까지 밥을 가져가서 기도를 하고, ‘아무개가 족집게’라는 소문을 들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을 찾아가 점을 보기까지 한다.
사실은 신(神)이 내린 용한 점쟁이라 할지라도 ‘내’가 아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내’가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알고 있는 것이라야지, 점을 보러 가는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알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나’도 전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냥 넘겨짚어서 하는 말일뿐이다. 그러므로 헛된 것에 의지하여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불자라면 불 보살의 광명 정대한 자비에 의지하여 자기의 정성을 다 바치는 자력(自力)의 기도를 해야만 한다.
“점쟁이가 소원 성취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기도를 한 번 해볼까?”
“내가 절에다 많은 돈을 시주했으니 부처님께서 봐 주겠지.”
이렇게 요행수를 바라는 기도는 마음에 때를 잔뜩 끼게 하고, 언젠가는 사도(邪道)로 빠져들게 한다. 나아가 진실한 불법은 10만 8천리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업장이 맑아지기는커녕 더욱 두터워질 뿐인 것이다.
정녕 지나치게 타력(他力)에 의존하여 자기 속까지 빼 주게 되면, 올바른 신심(信心)을 회복해 가지기가 매우 어렵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 도리를 분명히 알아서 요행수를 떠난 자력의 기도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만 하면 업장은 저절로 맑아지고 복은 저절로 찾아 들게 되는 것이다.
불자들이여, 부디 명심하라.
부처님을 돌로 만들었든 쇠로 만들었든 나무로 만들었든 기도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도하는 장소가 사찰이건 집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요행수를 바라지 않고 지극 정성을 드리면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복은 저절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부디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신심 있는 기도를 하라. 신심 있는 기도를 할 때 환희심이 샘솟고, 환희심이 생기면 신심도 더욱 확고해진다. 아울러 환희심이 가득한 곳에는 괴로움이 있을 수 없고 언제나 기쁘고 즐겁고 평안함이 깃들게 되는 것이다.
신심 있는 자력의 기도, 이 기도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단지 자기 능력에 맞추어서 일심 지성(一心至誠)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면 되는 것이다. 요행수를 떨쳐 버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모름지기 요행수를 버리고 참된 ‘나’의 신심을 다 바치는 기도를 하라. 이것이야말로 기도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하는 비결이요. 기도를 통하여 해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요긴한 가르침인 것이다.
이제 장을 바꾸어 불 보살 가피의 유형과 사례를 함께 묶어 살펴보도록 하자.
삼종 가피 속에서
기도는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소원이 있으므로 기도를 하는 것이고, 기도를 하는 이상 반드시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불보살은 어떻게 가피를 보여주는 것일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은 사례들을 유형별로 나누면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현실에서 바로 가피를 입어 소원이 성취되는 현증가피(顯證加被), 꿈을 통하여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몽중가피(夢中加被), 언제나 은근하게 보호를 받는 명훈가피(冥勳加被)가 그것이다.
이들 삼종가피(三種加被) 중, 다급한 일을 당한 사람이 기도를 할 때는 현증가피 또는 몽중가피를 입는 경우가 많고, 평소에 안락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명훈가피를 입어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피에 대해 실제로 있었던 예를 들면서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현증가피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다급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다급한 일이 발생했지만 내 마음대로도 할 수 없고 남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면 그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다급한 생각에 음식 맛은커녕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러한 때에 지극히 기도를 하면 느닷없이 좋은 일이 찾아 들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증가피, 불보살께서 현실에서 바로 자비를 나타내어 가피력을 증명해 보이는 현증가피인 것이다.
나에게 자주 찾아오는 신도 중 일명 ‘부장판사 보살’이라는 분이 있다. 지금은 나이 70세가 다 되었지만, 약 20년 전 남편이 부장판사를 지낼 무렵에 처음 인연을 맺었으므로 아직까지 ‘부장판사 보살’이라 부르고 있다.
그녀에게는 경기 여고 동창생인 반야행(般若行)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반야행은 매우 불심이 깊었으며, 동창생인 그녀에게 불교를 믿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나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평생 어려움을 모르며 살았고 남편이 부장판사에 올라 있는 그녀였으므로 처음부터 종교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스님, 불교를 믿을까요? 다른 종교를 믿을까요?”
“마음대로 하시오.”
이렇게 까불까불하면서 몇 차례 찾아오더니, 하루는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나타나 다급한 일을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저에게는 육군 소령으로 제대한 남동생이 있습니다. 우리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지요. 그 동생이 제대후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밑천이 모자란다며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의 기둥인데 어떻게 됐든지 성공해야지’하는 마음에서 있는 돈을 탈탈 긁어 빌려주었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요구를 하여 남의 돈을 빌려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이란 게 애초부터 사기꾼의 꾐에 빠진 것이어서, 돈을 몽땅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려서 준 돈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모아 놓은 돈은 고사하고 남에게 돌려쓴 돈과 이자만 하여도 5백만 원이나 됩니다.”
그 당시로는 5백만 원이라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으므로 남편과 상의하여 해결할 것을 권하였다. 판사 부인은 펄쩍 뛰었다.
“아이구, 스님. 우리 남편은 다른 일에는 관대하지만 돈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엄합니다. 우리 남편이 알면 저는 쫓겨납니다. 얼마나 답답하던지 성당에 찾아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드리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하나님의 뜻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씀만 일러 주셨습니다. 스님,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내 마음대로도 안되고 남의 도움도 구할 수 없을 때는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이 빚을 갚아 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스님, 방법을 일러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살님이 사는 대구 삼덕동에는 관음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주지스님을 찾아가서 ‘법당에서 3일 동안 절을 하겠습니다’는 말씀을 드리고, 법당 한쪽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십시오. 적어도 3천배를 해야 합니다.
3천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대겁(三大劫) 동안 이 세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한 번씩 절을 하는 것입니다. 시방 삼세 3천 부처님께 한 번씩 지성껏 절하면서 소원을 빌어 보십시오. 지극 정성을 다해 절하십시오. 그렇게 하기를 3일만 하면 부처님 중 적어도 한 분은 가피를 내려 틀림없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오.”
부처님께 매달리기로 결심한 그녀는 이튿날 아침 관음사로 가서 절을 시작했다. 3천배가 힘들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참 더운 여름이었으므로 더욱 힘이 들었다. 3백배도 하지 않았는데 웃옷이 몸에 붙었고, 천번 정도 하니 아랫도리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2천배 정도 하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3천배가 가까워지자 엎드리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판사 부인은 이를 악물고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3천배를 올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끌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서 자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어디가 아픈가?”
대답은 않고 끙끙 앓기만 하는 아내가 애처로워 남편은 의사의 왕진을 청하였다.
“사모님이 요즘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병은 없는데요.”
의사가 가고 난 후에도 그녀가 끙끙 앓자 남편은 밤새도록 얼음찜질도 해주고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이튿날 남편이 출근하자 그녀는 또 관음사를 찾아가서 3천배를 하였고,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하였다.
남편 몰래 사흘 동안의 도둑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막 자리에 누우려는데 법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부장판사 님께서 방금 졸도를 하여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그녀는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산소 마스크를 쓰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과로로 인한 졸도입니다. 입원하여 사흘 정도만 푹 쉬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밤에는 끙끙 앓는 아내를 돌보랴, 낮에는 또 법원에서 격무에 시달렸으니 과로하여 쓰러질 만도 하였던 것이다.
그 며칠 동안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병문안을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같으면 꽃을 들고 오거나 과일, 통조림 등을 가지고 올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원 비에 보태어 쓰라’며 부조금을 주고 가는 것이었다. 남편이 퇴원한 다음 그녀가 그 돈들을 세어 보았더니, 묘하게도 한 푼이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5백만 원이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고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남편은 의외로 순순히 허락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리신 것이 틀림없구먼, 그 돈으로 빚을 갚도록 하구려.”
그녀는 동생 때문에 진 모든 빚을 갚았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침마다 108배를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하는 철저한 불자가 되었다.
이 부장판사 부인이 입은 가피가 바로 현증가피로서,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만약 다급한 일이 있다면 어찌 용맹스런 기도 없이 해결을 보려고 할 것인가? 마땅히 다급한 일이 닥치면 힘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 믿음이 깃든 기도로써 불보살의 품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리라.
2) 몽중가피
꿈은 우리 생활의 그림자요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러므로 불보살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 낮에 먹은 마음이 그대로 연장되어 밤의 꿈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이 몽중가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소망이 꼭 이룩되게 해주십사’ 하고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그 사람의 소망에 부응하는 편지 한 장을 주거나, 약을 주거나, 차를 한 잔 주는 꿈을 꾸게 된다. 이와 같은 꿈을 꾸면 자기의 소망은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관세음보살의 몽중가피라고 한다.
곧 꿈속에서 받는 통지서는 합격 통지서요, 차를 한 잔 받아 마시거나 청심환 한 알을 얻어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징조이다. 꿈 가운데 열쇠를 하나 받으면 이튿날 생각지도 않던 돈이 들어오게 된다.
불가(佛家)에 전해지고 있는 기도 영험담 중에는 삼종가피 중 이 몽중가피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약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서울 미아리에 40대의 보살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닦은 복이 많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고, 돈도 잘 벌고 가정도 잘 돌보는 남편을 만났으며, 아이들도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여 근심 없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안이 허는 병이 생겼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온 입안이 헐어서 음식은커녕 물조차 먹기 힘든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차도가 없고, 한의원을 찾아가니 ‘입안이 허는 병은 위장에서 온다’고 하며 위장약을 지어 주었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설상가상이라 더니, 마침내는 혀를 움직일 때마다 입안이 아파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여위어만 갔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신경만 날카로워지게 되었다.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 아이들의 재롱도 귀찮게 느껴질 뿐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를 덮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집 가까이에 있는 절을 찾아갔다.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으나, 엎드리면 이빨이 다 쏟아지는 것 같아 절도 할 수 없었다. 입안이 퉁퉁 붓고 헐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가만히 앉아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제 입병 좀 낫게 해주십시오.”
온 종일 부처님만 쳐다보면서 이렇게 한마음으로 빌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녀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열심히 부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불단을 내려 오셨다. 그리고는 다기(茶器)에 담겨 있는 물을 찻잔에 가득 따라 주셨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려는데 부처님께서 일러주셨다.
“그냥 삼키지 말고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 넘겨라.”
그녀는 시키는 대로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거짓 말처럼 입병이 말끔히 나아 있었다. 매운 음식, 짠 음식, 그 어떠한 것을 먹어도 입안이 아프지 않았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감격하여 불교 신문에 이 사실을 투고하였다. 글솜씨는 서툴지만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을 알리고자 투고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꼭 소리를 내어 염불을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 念’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생각하면 그것이 참된 염불이요,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이다.
3) 명훈가피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외우는 예불문 끝 부분에는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唯願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勳加被力).....”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 뜻은 “오직 원하옵건대 다함없는 삼보께서는 대자대비로써 저의 정성스런 절을 받아들여 은근히 가피력을 내려 주옵소서” 하는 것이다.
옛 말씀에 ‘노는 입에 염불하랬다’고, 가거나 오거나 빨래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관세음보살을 불러서 염염관세음(念念觀世音), 생각 생각에 관세음보살이 함께 하게 되면 가는 곳마다 머무르는 곳마다 편안한 세상, 곧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으로 바뀌어 버린다.
바로 이것이 명훈가피이다. 언제나 불보살의 보호를 받고 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난이 저절로 피해 가고 항상 기쁘고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하게 되며, 입가에는 미소를, 가슴에는 태양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명훈가피에 대해서는 나의 큰 제자인 혜인(慧印)스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혜인스님이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5.16 직후라서 군대가 요즘처럼 편안하지 못하고 아주 고될 때였다. 기합도 심하여 걸핏하면 ‘군기가 빠졌다’고 하면서 방망이나 곡괭이로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맞았다. 사소한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고 인정 사정없이 두들겨 팼던 것이다.
혜인 스님은 군복무를 하면서 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훈련을 받을 때에도 ‘하나-둘-셋-넷’ 할 때에 ‘관-세음-보-살’ 하면서 구령을 붙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한 번씩 외웠다.
어느 날 혜인스님은 그 당시의 군대에서 볼 때 크게 군기가 빠진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연탄불을 갈기 위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연탄을 내무반밖에 둔 채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그만 잊어버리고 갖다 넣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을 중대장이 발견한 것이다.
“어떤 놈이 불붙은 연탄을 이곳에 두었어?”
‘나 때문에 우리 소대원 전체가 기합을 받겠구나.’
혜인스님이 조바심에 떨며 자백을 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대대장이 그 중대장을 찾았다. 정말 뜻하지 않게 기합을 모면한 것이다.
또 한 번은 난폭하기로 이름난 하사에게 소대 전체가 기합을 받게 되었다. 그 하사는 ‘손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하더니, 야구 방망이를 들고 한 명씩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백정같이 생긴 하사가 힘을 다해 때리니 맞은 사람들은 모두 쓰러지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쭉 차례대로 맞아 오다가 혜인스님의 차례가 되었다. 혜인스님의 눈에는 그가 염라대왕의 사자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내무반 문이 활짝 열리더니 장교가 나타났다.
“너 이 자식! 또 아이들 패는구나.” 하더니만 그 하사를 혼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쓰러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면서 ‘안 맞았다’고 우물우물 넘어가는 바람에 기합이 중단되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혜인스님 앞까지 와서 기합이 중단되는 일이 생기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관세음보살과 화엄성중을 부르다가 잠이 든 혜인스님은 꿈을 꾸었다. 자기가 수백 명의 병사와 함께 연병장에 서 있었고, 주위에서는 총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 장교 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를 불러내더니 어디론가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부대 전체가 연병장에 모여 서 있는데, 어디서 지프차가 하나 오더니 혜인스님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어쩐 일인가’하여 가 보았더니, 육군본부에 가서 상장 쓰는 일을 맡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오십 장씩, 백 장씩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붓글씨를 잘 쓰지 못했는데, 그때 붓글씨 연습을 실컷 하여 한글 글씨가 크게 향상되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혜인스님은 그 힘든 시절에 붓글씨를 쓰면서 편안하게 군복무를 마쳤으니, 항상 기도하면 불보살의 은근한 가피가 언제나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명훈가피를 입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종일 기도하지 않아도 좋다. 하루에 108배 또는 10분 동안의 관세음보살 염불 기도라도 꾸준히 해보라. 틀림없이 명훈가피를 입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평화로움이 깃들게 된다. 하물며 언제나 불보살을 생각하고 기도한다면, 어찌 마음이 태양처럼 밝아지지 않으리.
거듭 강조하건대 기도성취의 비결은 ‘간절 (切)’에 있고, ‘간절 切’은 삼매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잠깐이라도 삼매를 이루게 되면 불보살의 가피는 저절로 찾아 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불자들이여, 형편 따라 능력 따라 내 마음을 내가 모으는 기도를 하자. 흩어진 정신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서 불보살과 한 몸을 이루는 기도를 하자.
이렇게만 하면 불보살께서 은근히, 그리고 현실 속에서 우리를 보호함은 물론,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영원 생명, 무한 능력이 개발되고, ‘내’가 서 있는 이곳 또한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부디 올바른 기도법에 의해 참된 기도를 하는 불자가 되기를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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