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허다한 언설들이 모두 방편으로 대
꾸한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신 실다운 법이란
아주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실다운 법이란 전도됨이 없거늘, 네 지금 묻는 곳에서 스
스로 전도되고 있느니라. 그러면서 무슨 실다운 법을 찾는다
는 말이냐?"
"묻는 곳에서 이미 스스로 전도된 것이라면, 스님께서 대답
하신 곳은 어떠하십니까?"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지언정 남의 일에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개와도 같아서 움직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문
득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눠 별다를 게 있겠느
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이 선종은 위로부터 이제껏 이어 내려 오면서 알
음알이[知解]를 구하게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도를 닦으라
고만 했을 뿐인데, 사실 이것도 교화하는 방편설이니라. 그러
니 도 또한 배울 수없는 것으로서, 뜻을 두고 알음알이를 배
우게 되면 도에는 도리어 어둡게 된다. 도에는 일정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대승의 마음[大乘心]이라고 하느
니라. 이 마음은 안팍.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실로 방위
와 처소가 없는 것이니,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
다. 지금까지 너에게 말한 것은 뜻으로 헤아림이 다해 버린
바로 그자리가 도라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뜻으로 헤아림이
다하면 마음에는 방위도 처소도 없느니라.
이 도라는 것은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뜻으로 헤아리는데 미혹되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이 일을 자상히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
러나 너희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셔서 방편으
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고기를 잡았으면 통
발을 잊으버려라!'고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하고 마음을 알아 본래의 근원에 통달한 이를 사문(沙門)이
라 부른다. 사문이라는 자리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어 지는 것
이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너희들은 남의
집에 세살이 하듯,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하면서 배워서 얻
으려하니, 될 까닭이 있겠느냐?
옛 사람들은 영민하여 한 말씀 들으면 당장에 배움을 끊었
다. 그래서 그들을 '배울 것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
이라고 했다. 반면 지금 사람들은 하많은 알음알이를 구하고,
널리 글의 뜻의 캐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하지만, 넓은 지식
과 견해 때문에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는 매 것이므로 각각 말씀이 다르다. 다만 요
달하여 알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느니라. 무엇보다도 주의할
것은 한 근기를 대상으로 말씀에 있어서 글자에 얽매여 알음
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실로 여래
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종
은 이런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니, 다만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요, 다시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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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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