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선(臨濟禪)의 가풍(家風)

(진제선사)

상당(上堂)하여 주장자(柱杖子)를 들어 보이시고,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신 후,

欲識佛祖解脫道

萬法縱來不相到

眼見耳聞總而絶

聲色堆裏浩浩地

四海五湖參究者

日用參究活句禪

부처님과 조사의 해탈의 도를 알고자 할진대

만가지 법이 비록 옴이나 서로 이르지 못한지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이 다 끊어짐이나

소리와 빛깔의 무더기 속에 넓고 넓은 땅이로다.

온 세상의 선(禪)을 참구하는 자여!

항상 활구선(活句禪)을 참구할지어다.

부처님께서 도를 깨달으신 후 하신 말씀이

"삼칠일(三七日)동안 사유(思惟)하고 사유(思惟)해도 법(法)을 설(設)하지 않고, 열반(涅槃)에 드는 것만 같지 못하다."

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냐?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도(道)를 깨달은 후 왜 열반에 드시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셨는가? 이 부처님 뜻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문수(文殊)보살이 옆에서 지켜보고 말하기를

"법(法)은 비록 그러하나 방편(方便)으로써 하근(下根)중생을 위해 얕은 법을 설(說)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간청(懇請)을 하니 부처님께서

"너의 말에 일리(一理)가 있구나 !"

하시고 49년간 인연(因緣)을 따라, 그릇을 따라 설법(說法)을 하셨다. 49년 동안 법을 설하신 후 열반에 드시기 전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49년 동안 인연과 그릇을 따라 팔만 사천 법문을 설했지만 실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느니라."

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큰 깨달음(大覺)의 살림살이를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면, 그 의미(意味)의 머리와 꼬리를 멋있게 장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존께서 영산(靈山)에서 설법하시는데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우담바라(優曇跋羅)꽃을 올리니, 세존께서 그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迦葉)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전해주노라."

하셨다.

세존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인간과 천상의 대중에게 설법을 하시려는 차에 가섭(迦葉)이 늦게 도착했는데, 세존께서 자리를 나누어 앉으시니 대중이 모두 어리둥절했다.

세존께서 49년 설법을 다 마치시고 사라쌍수(娑羅雙樹)에서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7일이 지나서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늦게 이르러 관을 세 번 도니, 세존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셨는데, 가섭존자가 예(禮)를 올리니 대중이 어리둥절했다.

大衆

還會三處傳心?

麗天高日 萬物成長

成長中 生歡喜

雖然歡喜 仔細點檢

枝?上 更生枝?

대중은 삼처전심을 알겠는가?

하늘에는 높은 해가 빛나니

만물이 성장하는구나.

자라는 가운데에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도다.

비록 그처럼 즐거워하나 자세히 살펴보건대

가지 위에 또 다른 가지가 자라는 도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자 청법(聽法)대중이 모두 각자의 처소(處所)로 돌아갔는데, 한 여인이 부처님 근좌(近座)에 좌정(座定)한 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이 그 광경을 보고 부처님께 여쭙기를

"대중들이 모두 돌아갔는데 어찌하여 저 여인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저렇게 앉아 있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이르셨다.

"저 여인이 정(定)에 들어 있으니 문수 너의 신력(神力)으로 저 여인이 정에서 나오도록 한 번 해보아라."

말씀이 떨어지자 문수보살이 신통(神通)으로 백천 문수를 허공 중에 나투고 위요삼잡(圍繞三?)을 하고, 탄지(彈指)를 해보았는데 여인은 정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이 광경을 지켜보시고는

"문수야, 네가 비록 백천(百千) 신통 묘용(神通妙用)을 나투어도 너의 신력으로는 저 여인을 정(定)에서 나오게 할 수 없다. 하방(下方) 42국토를 지나가면 망명(罔明) 초지보살(初地菩薩) 이 있는데 그이라야 저 여인을 정(定)에서 나오게 할 수 있다."

고 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망명(罔明)보살이 땅에서 솟아 나와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한 여인을 가리키시며

"저 여인이 정에 들어 있으니 망명 네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해 보아라."

하시니 망명보살이 여인을 향하여 손가락을 세 번 퉁기자 여인이 바로 정에서 나왔다.

이 '여인출정화(女人出定話)' 법문은 세존(世尊)의 삼처전심(三處傳心)의 법문 외에 특별히 고준(高峻)한 공안(公案)을 제시(提示)함이로다. 이 공안을 투과(透過)하면 백천삼매(百千三昧)와 무량묘리(無量妙理)를 알아 얻어서 천상(天上), 인간(人間), 만인(萬人)에게 있어서 진리(眞理)의 사표(師表)가 될 것이다.

대중(大衆)아! 문수보살은 과거 칠불(七佛)의 스승이었거늘 백천 신통(神通)과 무량한 방편(方便)을 다해도 그 여자를 정에서 나오게 하지는 못하였는데 망명보살은 초지(初地)보살로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사이에 여자가 정(定)에서 나왔으니 이 어찌된 연고(緣故)냐?

대중은 이 도리를 알겠는가? 이르고 일러라.

대중이 말이 없으니 양구(良久)하신 후 이르시되

(經唄)

海枯終見底 人死不知心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밑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은 알지 못한다.

이렇듯 모든 공안은 부처님의 삼처전심에서 나왔다. 부처님의 정법을 마조선사와 임제선사가 대오견성(大悟見性)해서 부처님의 독특한 살림살이를 선양(宣揚)한 것이고, 눈 먼 사람들이나 야호(野狐)들이 몰라서 그러는데 바로 이 정법(正法)이 지금 한국에서 그 정통(正統)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唐)나라 때의 대선지식(大善智識)이셨던 마조(馬祖)선사의 문하에서는 84인의 뛰어난 법제자(法弟子)가 배출(排出)되었다. 그래서 역대 선지식들께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마조 선사를 부처님 이후 가장 위대한 도인(道人)이라고 평하셨다.

하루는 마조선사께서 편찮으셔서 원주(院主)가 아침에 문안(問安)을 드리며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십니까?"

하니, 마조선사께서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과거에 일면불(日面佛) 부처님과 월면불(月面佛) 부처님이 계셨다. '밤새 존후(尊候)가 어떠하십니까?' 하는데 왜 이 두 분 부처님의 이름을 들먹이셨을까? 마조선사의 이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은 알기가 가장 어려운 고준(高峻)한 법문이다. 이 한마디에는 마조 대선사의 전 살림살이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마조선사를 알고자 한다면 이 법문을 알아야만 한다. 역대의 선지식들께서도 이 법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 이 공안을 바로 알아야만 일대사(一大事)를 마친다."

고 하셨다.

"마조선사(馬祖禪師)를 알겠느냐?"

馬駒踏殺天下人(마구답살천하인)

臨濟未是白拈賊(임제미시백염적)

망아지는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이는데

임제는 능란한 도적이 못 되는도다.

임제선사의 회상(會上)에서 어느 날 양당(兩堂)에서 각각 수좌(首座)가 문을 열고 나오다가 서로 할(喝)을 동시(同時)에 한 일이 있었다. 이에 어느 스님이 임제선사에게 여쭈기를

"양당(兩堂)의 수좌(首座)가 동시(同時)에 할(喝)을 한 것에 주인과 손님이 있습니까?"

하니 임제선사께서

"주인과 손님이 분명히 있음이로다."

하셨다. 대중은 알겠는가? 임제선사의 진짜 살림살이를 알려고 할진대 이 빈주구(賓主句)를 알아야 한다.

임제(臨濟) 선사께서 발우(鉢盂)를 들고 탁발(托鉢)을 하시는데, 어느 집 문전(門前)에 이르러 탁발 왔다고 하시니, 한 노파가 대문을 열고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 염치없는 중아!"

그러자 임제선사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한 푼의 시주도 하지 않고서 어찌 염치없다 하는고?"

하니, 노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문을 왈칵 닫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기에서 임제선사께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알겠는가? 만약 임제선사께서 노파가 문을 닫을 적에 한 마디 일렀더라면 문전박대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면 임제 선사는 번갯불보다 빠르고 돌불보다 빠른 기봉(機鋒)을 갖추신 위대한 도인(道人)인데, 노파가 대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데는 왜 한 마디도 못하고 걸음을 돌리셨느냐?

향곡선사께서 이 질문을 가지고 제방(諸方)선사들에게 물으니 시원하게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향곡(香谷)선사께서 산승(山僧)에게 '네가 한 번 말해 보아라.' 하시기에 산승이 이와 같이 말씀드리니 좋아하셨다.

대중은 말해보라!

(經唄)

三十年來弄馬騎

今日却被驢子撲

삼십 년 동안 당나귀를 타고 희롱해왔더니

금일에 당나귀에게 한 번 들이받힘이로다.

고려말 태고 보우선사는 임제(臨濟)선사의 아손(兒孫)으로서 임제 가풍을 이은 대종사(大宗師)이시다. 처음 견성대오(見性大悟)를 하신 후 중국으로 들어가 석옥(石屋) 청공(淸珙) 선사를 찾아가 말하기를

"고려국(高麗國)에서 선사의 법을 이으러 왔습니다."

하니 석옥(石屋)선사가 묻기를,

"우두(牛頭) 법융(法融)선사가 4조 도신(道信)선사를 친견(親見)하기 전에는 정진(精進) 중에 백가지 새가 꽃을 물어오고, 천상(天上)의 동녀(童女)들이 공양(供養)을 지어 올렸으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셨다. 태고 선사가 답하기를

"부귀(富貴)는 만인이 부러워할 따름입니다."

석옥선사께서 또 묻기를

"사조(四祖)스님을 친견한 후에는 백가지 새들이 꽃을 물어오지 않고, 천상의 동녀들이 공양을 지어 올리지 않았으니 어찌 생각하느냐?"

태고 선사가 답하기를

"청빈(淸貧)한 생활은 만인에게 소외(疎外)되기가 쉽습니다."

석옥선사가 다시 묻기를

"공겁전(空劫前)에 태고(太古)가 있었는가?"

태고가 답하기를

"공겁(空劫)의 세계가 태고를 좇아 이루어졌습니다."

하니 석옥선사께서 아주 흡족(洽足)하게 생각하셔서 임제의 법을 전하시니 태고 선사께서는 고국(故國)으로 돌아오시어 임제의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리셨다.

산승(山僧)의 나이 서른 세 살 때인 정미년 하안거(夏安居) 해제(解制) 법회(法會)때에 묘관음사(妙觀音寺) 법당에서 향곡 선사와 법거량(法擧揚)이 있었다. 향곡 선사께서 상당(上堂)하시어 묵좌(默坐)하고 계시는데 산승이 나와서 여쭈었다.

"불조(佛祖)께서 아신 곳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불조께서 아시지 못한 곳을 선사께서 일러 주십시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니라."

이에 산승이

"그것은 불조께서 다 아신 곳입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는

"육육(六六)은 삼십육(三十六)이니라."

고 하셨다. 이에 산승이 예배(禮拜) 드리고 물러가자 향곡 선사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조실방(祖室房)으로 가셨다.

다음날 산승이 다시 여쭈었다.

"불안(佛眼)과 혜안(慧眼)은 여쭙지 아니하거니와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안목(眼目)입니까?"

하니 향곡 선사께서

"비구니(比丘尼) 노릇은 원래 여자가 하는 것이니라.〔사고원래여인주(師姑元來女人做)〕"

그러자 산승이

"오늘에야 비로소 큰스님을 친견(親見)하였습니다."

하니 향곡 선사께서 물으셨다.

"네가 어느 곳에서 나를 보았느냐?"

"관(關)!"

산승이 이렇게 답을 하니 향곡 선사께서는

"옳고, 옳다."

하셨다. 산승은 여기에서 향곡 선사로부터 임제정맥(臨濟正脈)의 법등(法燈)을 부촉(付囑)받고 또 전법게(傳法偈)를 받았다.

佛祖大活句

無傳亦無受

今付活句時

收放任自在

부처님과 조사의 산 진리는

전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라

지금 그대에게 활구법을 부촉하노니

거두거나 놓거나 그대 뜻에 맡기노라.

그리하여 경허, 혜월, 운봉, 향곡 선사로 이어져 내려오는 법맥을 전수 받아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로 내려오는 정법을 부촉 받았다. 이것이 부처님과 대대(代代)로 내려오는 조사(祖師)의 가풍(家風)이다.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것은 어디로부터 유래하였는가? 부처님의 정법이 이십팔(二十八) 대 보리달마(菩提達摩)를 거쳐 중국의 오조(五祖) 홍인(弘忍)선사에 이르러 당시에 선사께서 법을 전해 줄 지음자(知音者)를 찾기 위하여 어느 날 대중(大衆)에게

"모두 그 동안 공부하여 깨달은 바를 글로 지어오너라."

하시니 신수(神秀)스님이 며칠 동안 궁리(窮理)하고 궁리한 끝에 글을 지어바치기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몸은 이 보리(菩提) 나무와 같고,

마음은 명경대(明鏡臺)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 티끌이 앉겠끔 하지 말지어다.

여기서 '시시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밝은 거울에 먼지가 앉게끔 하지 말지어다.'고 한 이것은 점수(漸修)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돈오견성(頓悟見性)과는 거리가 멀다. 어쨌든 오조 선사가

"이 게송(偈頌)을 외우고 열심히 닦는다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짐은 면(免)하리라."

하시니 모든 대중들이 신수(神秀) 스님의 게송을 외우고 있었다. 그때에 어느 사미(沙彌)가 외우고 다니는 것을 노행자(盧行者)가 듣고는 사미에게 부탁(付託)하기를

"나도 한 게송을 지을테니 나를 대신해서 하나 써서 붙여다오."

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菩提)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밝은 거울 또한 대(臺)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 먼지가 있으리요.

오조 선사께서 이 게송을 보시고는 흡족(洽足)해 하셨지마는 대중들이 시기(猜忌)를 할까 염려하시어

"이것도 견성구(見性句)가 아니다."

하시면서 그 게송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는 신수에게 법을 전하지 않고 혜능(慧能)에게 법을 전하셨다. 왜냐하면 신수가 지은 게송은 몰록 깨달은 경지(境地)가 아니고, 더 닦아 나아가야 할 것이 남아있기 때문에 돈오돈수라고는 할 수 없고, 돈오점수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오조 선사께서는 신수의 게송을 보시고는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진리의 문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하면 과거의 습기(習氣)와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일시에 제거되므로 더 닦을 것이 남아있지 않다. 그 후 법을 전해 받은 육조 선사가 시절인연이 도래(到來)하여 무수한 납자(納者)들을 제접(提接) 하면서 어느 날 법문을 하시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받치고, 밝기로는 일월보다 밝고 검기는 옻칠보다도 검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되, 일상 동용(動用) 중에 가고 오고 말하는 가운데 쓰고 있으면서도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 무엇인고?"

이렇게 물으니 하택(荷澤)스님이 일어나서 답 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원(根源)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입니다."

했다. 이에 육조 스님이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

하고 호통을 치셨다. 그 후 7년만에 회양(懷讓)선사가 찾아와서 답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하니 육조(六祖) 선사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닦아 증득(證得)함은 어떻게 생각하는고?"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아니하나 오염될 순 없습니다."

육조선사가 말하기를

"다만 이 오염되지 않음은 모든 부처님께서 호념(護念) 하시는 바라. 네가 벌써 이러하고 나도 또한 이러하니라."

하니 흡족하시어 제자로 봉(封)하셨다. 그래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는 오조선사와 육조선사가 이렇게 분명히 선을 그어 놓았다. 한 편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이는 오조 선사 회상에 신수스님, 육조선사 회상에 하택(荷澤)스님이 있었는데, 견성을 하지 못한 지해종도(知解宗徒)들이 모두 점수를 정법이라고 주장해서, 그 법이 오늘날까지 전래되어 왔다. 견성을 하지 못한 스님들이 그릇되게 지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안(正眼)의 법을 면밀히 이은 종사(宗師)들은 돈오돈수, 즉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를 다 제창하셨다. 그래서 마조선사의 제자인 귀종(歸宗)도인은 어느 납자가 찾아가서

"어떤 것이 보임(保任)입니까?"

하고 여쭈자

一?在眼 空花亂墮

눈에 한 티가 가리면 허공 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고 하셨다. 이러한 안목을 갖춰야 비로소 선지식(善知識)이라고 할 수 있고 천하 사람들의 눈을 멀지 않게 할 수 있다. 보통 정안(正眼)이 바로 열리지 못한 분들에게 '보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토굴(土窟)에 가서 습기(習氣)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지 귀종(歸宗)선사처럼 이렇게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돈오돈수의 깨달음의 경지와 돈오점수와는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출가한 본래의 뜻은 견성성불(見性成佛) 하는데 있다. 그러면 견성성불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정진(精進)해야 하느냐? 활구(活句) 참선(參禪)을 해야한다. 고인네들 명안종사(明眼宗師)들도 활구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

"활구를 참구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하면 부처님과 조사(祖師)의 스승이 된다."

는 등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활구 참선은 어떤 것이 활구 참선이냐? 일천(一千) 성인(聖人)의 정액상(頂額上)의 일구(一句)를 투과할 것 같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 일천 성인의 정액상의 일구를 투과할 수 있도록 참구(參究)할지어다. 정액상(頂額上) 일구를 투과한 자는 살활종탈(殺活縱奪) 기용제시(機用齊示) 즉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고, 기(機)와 용(用)을 가지런히 쓰는 수완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견성(見性)을 하고자 할진대 그러한 대용맹(大勇猛)과 대신심(大信心)이 없는 사람은 이 화두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대용맹심과 대신심을 가지고 공부(功夫)를 지어나갈 것인가 하면, 오직 눈밝은 지도자인 선지식(善智識)을 만나서 바르게 참구하는 법을 배워 화두(話頭)를 간택(揀擇)한 뒤 일상 생활 속에 자나깨나 혼신(渾身)의 정력(精力)을 화두에 쏟을 것 같으면 자연이 습기(習氣)는 잠자고, 간절한 한 생각이 물 흐르듯이 도도(滔滔)히 흘러가게 되는데 화두가 도도히 흘러가서 깊이 들어가면, 의심삼매(疑心三昧)가 현전(現前)해 가지고 밤이 되는지 낮이 되는지 모르고 나중에는 몸뚱이까지 잊은 상태에서 홀연(忽然)이 보거나 듣거나 하는 찰라에 화두가 타파(打破)된다. 우리도 제불제조(諸佛諸祖)와 똑같은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추고 있는데 대용맹, 대신심을 가진다면 못할 것이 없다. 그래서 옛 도인(道人)들이 말씀하시기를

"의심이 크면 클수록 깨달음도 크다."

고 하셨는데 의심이 크다보면 진의(眞疑)가 발로(發露)되어서 온 천지가 의심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활구(活句) 참선을 한다고 말할 수 있고, 활구 참선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참선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제방(諸方)에서는 가지각색으로 화두참구법을 지도하고 있다. 혹자는 염불선(念佛禪)을 지도하고, 혹자는 관법(觀法)을 지도하고, 혹자는 묵조선(默照禪)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활구 참선과는 거리가 멀다. 이 활구 참선법은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을 쫓아서 백천(百千) 공안(公案)이 벌어졌는데 이 최고의 관문(關門)만 투과하면 활발발지(活潑潑地)를 얻어서 제불제조(諸佛諸祖)의 안목(眼目)을 갖추게 된다. 임제(臨濟)의 활구 참선법(活句參禪法)은 모든 사량분별(思量分別)이 다 끊어지고, 참 의심(疑心)이 드러나 일념(一念)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활연대오(豁然大悟)를 하나니 이것이 독특한 활구 참선법인데 묵조선(默照禪)이니 염불선(念佛禪)이니 관법(觀法)같은 것은 대오견성(大悟見成)하기가 어렵도다. 그러면 일천성인의 정액상(頂額上) 일구는 어떠한 것이냐 물으면

三世 佛祖가 遭倒炭이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흑탄속에 거꾸러짐이로다.

필경(畢竟)에 금일(今日)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千言萬語無人會

向下文長付來日

천 번을 말하고, 만 가지를 말해도 아는 사람이 없네.

향(向)하는 아래의 글이 길으니, 내일에 있어 부치리라.

할(喝)을 하시고, 주장자(柱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고, 하좌(下座)하시다.

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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