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의 종류(種類) - 청화선사 |
①외도선 |
인과(因果)를 불신(不信)하고 유루공덕(有漏功德)을 위(爲)하여 닦음. |
②범부선 |
인과(因果)를 신(信)하고 유루공덕(有漏功德)을 위(爲)하여 닦음. |
③소승선 |
아공(我空)을 신(信)하고 해탈(解脫)을 위(爲)하여 닦음. |
④대승선 |
아공(我空) 및 법공(法空)을 신(信)하고 해탈(解脫)을 위(爲)하여 닦음 |
⑤최상승선 |
┏여래선(如來禪)┓본래(本來) 부처로서 일체 ┃ ┃무루공덕(一切無漏功德)이 ┃ ┃원만히 구족(具足)함을 신 ┗조사선(祖師禪)┛해(信解)하고 닦는 선(禪). |
다음에는 범부선(凡夫禪)이 있습니다. 외도는 불교를 안 믿는 것이고 범부라 할 때는 벌써 불교는 믿는 분입니다. 인과를 믿는 것입니다. 인과를 믿지만 아직은 무위공덕(無爲功德), 해탈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복이 많아지고 재수도 좋아지고 집안도 좋아지고 자기 병도 낫고 하는 이런 세간적인 유위(有爲)공덕을 위해서 닦는 것이 범부선입니다.
그 다음에는 소승선(小乘禪)입니다. 소승이라 하더라도 소승법은 깨달은 분상(分上)입니다. 구경적인 깨달음은 못되어도 역시 견도(見道)해서, 진여불성이 현전해서, 자기 자성을 알긴 알았으나 다만 습기를 못 여의였다는 말입니다. 아공(我空)을 믿습니다. 내 몸뚱이는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이루어지고 내 마음도 역시 수나 상이나 행이나 식이 인연따라 잠시 합해져서 되었으므로 내가 공(空)하다는 것을 믿지마는 일체만법이 다 비었다는 법공(法空)을 미처 못 깨달은 것입니다. 소승도 깨달음이 철저하지 못하여 완전한 깨달음은 못되나 역시 깨달음의 분상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승의 해탈을 위해서 닦는 것이 소승선입니다.
그 다음에 대승선(大乘禪)은 나도 원래 비고, 일체 만법도 다 비었다는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습니다. 무슨 이데올로기나 무슨 주의나 또는 어떤 학설이나 이런 것이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이지 본래 이것이 이른바 무가정(無假定)의 원리가 못되는 것입니다. 이런 법공자리를 미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라하면 사회주의 사상을 원리적으로 믿고서 모두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경직된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인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더라도 법공을 철저히 못 증(證)한 사람들은 꼭 자기 식으로, 같은 법문도 자기 견해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합니다. 자기 주장, 자기가 느끼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법공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공, 법공을 믿고서 해탈을 위하여 닦는 것이 대승선입니다.
그 다음 최상승선(最上乘禪)은 여래선(如來禪) 조사선(祖師禪)을 말합니다. 더러는 여래선을 대승선 가운데 넣는 분도 있습니다만 뜻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최상승선이란 다시 위없는 선이란 말입니다. 여래선, 조사선도 원래 둘이 아니요, 조사선이란 말도 원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구태여 본래성불(本來成佛)의 뜻을 강조한 방면에서 구분할 때 여래선은 주로 부처님 경전을 참고로 많이 하였다고 볼 수가 있고, 조사선은 부처님 가르침을 무시한 것은 아니겠지마는 이른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교 밖의 격외(格外) 도리에 보다 더 철저히 들어간다는 데서 이름지어진 것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최상승선은 본래부처로서 일체 무루공덕(無漏功德)이 원만히 구족함을 신해(信解)하고 닦는 선입니다. 따라서, 최상승선이 될 때는 모든 공덕을 다 원만히 갖추고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공, 법공을 믿고 공덕총림(功德叢林)이나 또는 현법락주(現法樂住) 모두가 다 갖추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쉬지 않을래야 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공덕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남을 미워도 하고 좋아도 하고 분별시비하는 이 마음은 본래 마음이 아니겠지마는 망상하는 이 마음 떠나서 또 다른 마음이 있지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분별시비하는 중생심, 이 마음 가운데에 일체공덕이 다 갖추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닦지 못해서 공덕을 발득(發得) 못하는 차이 뿐입니다. 앞으로 닦은 뒤에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불이라 할 때에 본래성불(本來成佛), 즉신성불(卽身成佛) 또는 당래성불(當來成佛)의 세 가지로 성불의 뜻을 구분해서 얘기도 합니다. 본래성불은 본래 부처가 되어 있다는 말이요, 즉신성불은 이몸 이대로 금생에 바로 부처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금생에 충분히 부처를 이룰 수가 있어야 하겠지요. 또는 금생에 그렁저렁 했으면 금생에는 못 이룬다 하더라도 당래성불이라, 당위(當爲)적으로 마땅히 미래에는 성불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선하는 분들은 본래성불 자리를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일체의 번뇌와 때묻지 않은 모든 공덕을 원만히 갖추어 있다'고 믿을 때에 이른바 안심법문이 되는 것입니다. 구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만 믿어버리면 사실은 구할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휴거헐거(休去歇去)라, 이 마음 쉬고 또 쉬어버리는 것입니다. 앞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근본불교를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마음 공덕을 생각할 때는 모두가 헛것입니다. 다만, 복잡한 현대사회요 고학력 시대라서 학자도 많고 또 수도인도 많은데 그런 분들이 또 불교를 했다는 분들이 여러 가지로 부처님 가르침을 쪼개고 보태고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체계를 못 세운사람들은 혼미하고 혼란을 느껴 버립니다. 따라서 그런 혼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근본불교부터 여러 시간 동안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우리가 윤곽을 취해서 근본적인 줄거리만 잡은 다음에는 누구의 말씀에 대해서나 참고로는 할 망정 거기에 먹혀들 필요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최상승선만이 문제입니다. 이 가운데에 다 들어 있으므로 그 외에 것은 문제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땅히 출가사문(出家沙門)은 최상승선만을 문제로 해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 생과 더불어서 묻어있는 근본적인 본능적인 구생기(俱生起)번뇌, 또는 금생에 나와서 잘못 듣고 잘못 배우고 잘못 생각하고 지은 분별기(分別起)번뇌, 이런 번뇌 때문에 최상승선을 한다 해도 역시 자꾸만 끄달리고 장애가 되고 합니다. 마땅히 우리는 최상승선 도리를 한발도 헛딛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구체적으로 최상승선은 어떠한 방편이 있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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