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머리말

<증도가(證道歌)>는 영가(永嘉)스님이 지었습니다.
영가(永嘉)스님의 휘(諱)는 현각(玄覺)이요, 자(字)는 도명(道明)이
며, 성은 대(戴)씨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浙江省溫州府永嘉縣]
사람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三臟)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고 합니다.
영가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천태지관(天台止觀)을 많이 익
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선관(禪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천태종 팔
조(八祖)인 좌계 현랑(左溪玄朗) 법사와는 동문(同門)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난 뒤에도 서로 서신 왕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찍이 온주의 개원사(開元寺)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
내며 효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하여 온 사중(寺中)과 동구(洞口)에서 비방을 하였습
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 보
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영가스님은 전혀 그러
한 데 개으치 않았습니다.
영가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현책(玄策)이라는 선사가 지나가고 있었는
데 나이는 60여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노숙(老
宿)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영가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했더니, 노숙
은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왔
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
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스님은 영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법사는 누구인가?"
"제가 <방등경론>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유
마경>에서 불심종(佛心宗)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습니
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노스님은 영가스님의 기상이 다
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俠氣)가 있음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당신은 불법
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
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
가하였습니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소. 그렇게 하
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선사가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서 발 아래 예배하고 스승으로 섬
기시오."
그러자, 영가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
신 듯 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허
락해 주십시오." 하자, 현책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로서는 그대의 증명법사가 되기는 곤란하오. 지금 조계에는 육
조대사가 계셔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다."
그러나 영가스님은 누님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 망설였
습니다. 그러자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 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 때에 영가스님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始興縣)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니 때
마침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
다. 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
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저 사문(沙門)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대덕)은 어디서 왔기
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육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기제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
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은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하는 힐난입니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스님께서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無常)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
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
셨습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
달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육조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
다고 하니 그 무상(無常)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
[無生]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 버린 구경을 성취
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라는 말
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남이 없고 그대로가 빠름이 없는데, 다시 남
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스님이 반
박하자, 육조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
고 인가하시니, 천여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이로소 영가스님은 다시 동랑(東廊)으로 가서 육환장을
걸어 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스님께 정중히 예배하였습니다. 위의
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
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 인사를 드리자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고 하느냐?"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는 도리를 알았구나!"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
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뜻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
는 욱조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분별을 하여도 심(心), 의(意), 식(識)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타남이라는 영가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육
조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영가스님의 등을 어루먼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그리하여 그 때 사람들이 영가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다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육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
스님을 전송하셨는데, 영가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 가다가 석장을 세
번 내려치고 말했습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
았노라!"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은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부사의(不思議)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가(歌), 항(行), 게(偈), 송(頌)은 모두가 그의 누나
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선천(先天) 2년(서기 713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諡號)는 무상대사(無相大師), 탑호(塔號)는 정
광(淨光)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스님께서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담(法談)을
평하기를,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나은 듯하고 육조스님이 말에
몰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수승한
사람이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을
하면 영가스님을 잘못 본 사람입니다. 영가스님 자신이 <증도가(證
道歌)>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조계의 길을 깨친 뒤로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고 하여, 조계산에 있는 육조스님을 찾아와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자기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古人)들은 영가스님이 깨친 대목을 두고 말하기를 앞의 법담
에서,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
하지 못하는가?"
하는 말 끝에서 깨쳤다고 봅니다.
영가스님이 자기 스스로 조계의 길을 확실히 깨치고 난 뒤에는
나고 죽음에 자재하다고 말씀하셨으며, 자기가 평생동안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육조스님의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법문하였고 저술
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육조스님께 와서 깨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영가스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고 선종에서 깨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가스님의 행장(行
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증도가(證道歌)>에 대해서 조
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서 확철히 깨치고, 깨친 경지에 의
지해서 <증도가>를 지었는데, 천태종이나 다른 교가의 사상과는 많
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천태종에서는 교리적으로 볼 때 맞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하여 이것이 일종의 미친 견해이지 바른 견해는 아
니라고까지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종에서 볼 때는 <증도
가>가 선종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러헥 비난하
는 사람들은 선종을 모르는 데서 하는 말이지 바른 길을 아는 사람
이면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벌대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禪)과 교(敎)의 관계가 <증도가>에서 더욱 더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禪)에서는 '한 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一超直入
如來地]'고 많이 주장하는데 대해서, 교[敎]에서는 '점차고 닦아 성불
하는 것[漸修]'만을 근본으로 표방하므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
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영가스님의 <증도가>에 대해서 천태종
에서 가장 많이 공격했지만, 그 공격도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
며,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실제로 도 닦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만고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증도가(證道歌)>라 하였는데 '증(證)'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살펴 봅시다.
'증(證)'이란 구경(究竟)을 바로 체득함을 말합니다.
깨달음[悟]에도 증오(證悟)와 해오(解悟)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오(解悟)란 견해(見解), 지해(知解)를 말하는 것으로, 알ㄴ기는 분
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
면 얼음이 본래 물인 줄은 알았지만 아직 녹지 않고 얼음 그대로 있
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음을 녹여 물로 쓰고 있지는 못하듯
이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번뇌망상이 아직 그대
로 남아 있어서 중생 그대로인 것, 그것을 해오(解悟)라고 말합니다.
'증오(證悟)'란 얼음을 완전히 녹여서 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
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경계, 따라서 중생의 번뇌망상이 다 끊어
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니 곧 실지로
성불한 것, 견성한 것을 증오(證悟)라 하고 간단히 줄여서 증(證)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가(敎家)에서든지 선가(禪家)에서든지 증(證)이라 하면
근본적으로 체달한 구경각(究竟覺)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뭘
좀 아는 걸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통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노래에 '증(證)'자를 붙였냐 하면, 선종에서 깨
쳤다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증오(證悟)'를 근본적으로 삼앗지 '해오
(解悟)'로서는 근본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
시 말하면 선가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는
것은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조(普照)스님도 처음에는 선가에서 전한 법을 '해오(解悟)'라고
잘못 보았다가 나중에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이라든가 <원돈성
불론(圓頓成佛論)>같은 데서는 선이란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
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가에서의
근본 표본은 '해오(解悟)'가 아닌 구경각이며, 선가에서의 깨달음[悟]
이란 구경적으로 체달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래 이름부터도
'증(證)'이라 하였지 '해(解)'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친 것을 '돈오(頓悟)'라 하는데,
"돈(頓)이란 망념을 순식간에 없애는 것이요 오(悟)란 얻는 바가 없
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대주(大珠)선사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근본 무명인 제팔 아뢰야는 무기무심(無記無心)의 마계(魔界)까지
완전히 벗어나서 대원경지(大圓鏡智)에 들어가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친 것이 곧 '증(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가에서는 그 중간
적인 것을 '깨달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설명하는 <증도가>를 이해할 수 있지 '증
오(證悟)'와 해오(解悟)'를 혼동해서는 영원히 <증도가>를 모르고 마
는 것입니다.
이 <증도가>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해서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달마스님에서 육조스님까지, 그리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
으로 내려온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증오처(證悟處)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증(證)'이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도(道)라 하는가?
도(道)를 보리(菩提)라 각(覺)이라 하는데 <증(證)>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이 도(道)라 하는 것은 증(證)한 도(道)를, 구경각을 성
취한 그 구경처(究竟處)를 말합니다. 즉 도(道)란 구경을 깨친 '증
(證)'한 도(道)이지 중각적인 도(道), 해(解)한 도(道)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 구경각인 도란 무엇인가?
"무심이 도라고 일컬어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두터운 관문이 막혀 있느니라.
[莫道無心云是道하라 無心猶隔一重關이니라]"
도는 무심과 통합니다. 우리가 실지로 공부해서 대무심지(大無心
地)에 들어가서 구경각을 바로 성취하면 그만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해서 제팔 아뢰야의 무심 즉 멸진정(滅盡定)의 무심
은 도(道)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멸진정의 무심도 아주 벗어나서 제
팔 아뢰야의 근본 무명까지 끊어진곳에서 구경각을 성취하여 대원경
지가 현발한 이것이 도(道)인 것이며, 진연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증(證)'이 곧 '도(道)'이며 '도(道)'가 곧 '증(證)'이
라 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外息諸緣하고 內心無喘
心如墻壁하사와 可以入道니라]"
그러면 마음이 담과 벽 같아야 한다고 하니 목석과 같고 장승과
같은 무심지에 들어가 버리면 그것이 도(道)냐 하면, 그것이 도가 아
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이
장애가 되어 근본적인 구경무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경의 대무심지에 들려면 멸진정의 가무심(假無心),
거기서 한 관문을 더 뚫어서 구경무심을 성취해야 바로 도(道)를 깨
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인용한 달마스님의 말씀도 구경적인
도를 말씀함이지 중간적인 도가 아니며 증오(證悟)의 '도(道)'이지,
해오(解悟)의 '도(道)'는 아닙니다. 달마스님 이래로 선종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 구경각을 '증(證)'이라 하고, '도(道)'라 하는 것도 '증
(證)'을 근본 내용으로 삼기 때문에 구경각이 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도는 달마스님이 말씀하신 무심을 한층 넘어간 도가
되어야지 그 중간적인 것은 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가(歌)'란 무엇인가?
영가스님 자신이 확철히 깨친 경계를 노래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 확철히 깨쳐 구경각을 성취하고 나서
그 경지를 시가(詩歌)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본 문1 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2 絶學無爲閑道人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不除妄想不求眞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히지 않으니

3 無明實性 卽佛性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幻化空身 卽法身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4 法身 覺了無一物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本源自性 天眞佛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5 五陰浮雲 空去來 오음의 뜬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三毒水泡虛出沒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6 證實相無人法 실상을 증득하여 人. 法이 없으니

刹那 滅却阿鼻業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림이라

7 若將妄語?衆生 거짓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自招拔舌塵沙劫 진사겁토록 발설지옥 보를 스스로 부르리로다.

8 頓覺了如來禪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六度萬行 體中圓 육도만행이 본체 속에 원만함이라

9 夢裏 明明有六趣 꿈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覺後 空空無大千 깨친 후엔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도다.

10 無罪福無損益 죄와 복이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나니

寂滅性中 莫問멱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고 찾지 말라.

11 比來 塵鏡 未曾磨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더니

今日 分明須剖析 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12 誰無念誰無生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남이 없는가.

若實無生無不生 진실로 남이 없으면 나지 않음도 없나

13 喚取機關木人問 기관목인을 불러 붙들고 물어 보라.

求佛施功早晩成 부처 구하고 공 베풂을 조만간 이루리로다.

14 放四大莫把捉 사대를 놓아 버려 붙잡지 말고

寂滅性中 隨飮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15 諸行 無常一切空 모든 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하니

卽是如來大圓覺 이는 곧 여래의 대원각이로다.

16 決定說表眞乘 결정된 말씀과 참됨을 나타낸 법을

有人 不肯任情徵 어떤 사람은 긍정치 않고 정에 따라 헤아림이라

17 直截根源佛所印 근원을 바로 끊음은 부처님 인가하신 바요

摘葉尋枝 我不能 잎 따고 가지 찾음은 내 할 일 아니로다.

18 摩尼珠 人不識 마니주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如來藏裏 親收得 여래장 속에 몸소 거두어 들임이라

19 六般神用空不空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않고

一顆圓光色非色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로다.

20 淨五眼得五力 오안을 깨끗이 하여 오력을 얻음은

唯證乃知難可測 증득해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도다.

21 鏡裏 看形見不難 거울속의 형상 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水中捉月爭拈得 물속의 달을 붙들려 하나 어떻게 잡을 수 있으랴.

22 常獨行常獨步 항상 홀로 다니고 항상 홀로 걷나니

達者同遊涅槃路 통달한 이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도다.

23 調古神淸風自高 옛스러운 곡조 신기 맑으며 풍채 스스로 드높음이여

貌悴骨剛人不顧 초췌한 모습 앙상한 뼈 사람들 돌아보지 않는도다.

24 窮釋子口稱貧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하나

實是身貧道不貧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

25 貧則身常披縷褐 가난한 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道則心藏無價珍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보(無價寶)를 감추었도다.

26 無價珍用無盡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利物應時終不 중생 이익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27 三身四智 體中圓 삼신. 사지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八解六通 心地印 팔해탈 육신통은 마음땅의 인(印)이로
다.
28 上士 一決一切了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치고

中下 多聞多不信 중. 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는도다.

29 但自懷中解垢衣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誰能向外誇精進 뉘라서 밖으로 정진을 사랑할건가.

30 從他謗任他非 남의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난에 맡겨두라.

把火燒天徒自疲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나 공연히 자신만 피로하리라.

31 我聞恰似飮甘露 내 듣기엔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

鎖融頓入不思議 녹아서 단박에 부사의 행탈경에 들어가리로다.

32 觀惡言 是功德 나쁜 말을 관찰함이 바로 공덕이니

此則成吾善知識 이것이 나에게는 선지식이 됨이라

33 不因 謗起怨親 비방 따라 원망과 친한 마음 일지 않으면

何表無生慈忍力 하필이면 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 나타내 무엇할건가.

34 宗亦通說亦通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여

定慧圓明不滯空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공에 응체하지 않는도다.

35 非但我今獨達了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河沙諸佛體皆同 수 많은 모든 부처님 본체는 모두 같도다.

36 獅子吼無畏說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百獸聞之皆腦裂 뭇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37 香象 奔波失却威 향상은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고

天龍 寂聽生欣悅 천룡은 조용히 듣고서 희열을 내는도다

38 遊江海涉山川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尋師訪道爲參禪 스승 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라

39 自從認得曹溪路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了知生死不相干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40 行亦禪坐亦禪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니

語默動靜體安然 語默動靜에 본체가 편안함이라

41 縱遇鋒刀常坦坦 창. 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假饒毒藥也閑閑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도다.

42 我師得見燃燈佛 우리 스승 부처님께서 연등불을 뵈옵고

多劫 曾爲忍辱僊 다겁토록 인욕선인이 되셨도다.

43 幾廻生幾廻死 몇번을 태어나고 몇 번인나 죽었던가.

生死悠悠無定止 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도다.

44 自從頓悟了無生 단박에 깨쳐 남이 없음을 요달하고부터는

於諸榮辱何憂喜 모든 영욕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랴.

45 入深山住蘭若 깊은 산에 들어가 고요한 곳에 머무니

岑 幽邃長松下 높은 산 그윽하여 낙락장송 아래로다.

46 優遊靜坐野僧家 한가히 노닐며 절 집에서 조용히 앉았으니

격寂安居實蕭灑 고요한 안거 참으로 蕭灑하도다.

47 覺卽了不施功 깨친즉 그만이요 공 베풀지 않나니

一切有爲法不同 모든 유위법과 같지 않도다.

48 住相布施 生天福 모양과 머무는 보시는 하늘에 나는 복이나

猶如仰箭射虛空 마치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도다.

49 勢力盡箭還墜 세력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招得來生不如意 내생에 뜻과 같지 않는 과보를 부르리로다.

50 爭似無爲實相門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에

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감과 같으리오.

51 但得本草愁末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如淨瑠璃含寶月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52 旣能解此如意珠 이미 이 여의주를 알았으니

自利利他終不竭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다함이 없도다.

53 江月照松風吹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 부니

永夜淸 何所爲 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을건가.

54 佛性戒珠 心地印 불성계의 구슬은 마음의 印이요

霧露雲霞 體上衣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55 降龍鉢解虎錫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싸움 말린 석장이여

兩 金環鳴歷歷 양쪽 쇠고리는 역력히 울리는도다.

56 不是標形虛事持 이는 모양을 내려 허투루 지님이 아니요

如來寶杖 親 跡 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이로다.

57 不求眞不斷妄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됨도 끊지 않나니

了知二法 空無相 두 법이 공하여 모양 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58 無相無空無不空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음이여

卽是如來眞實相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59 心鏡明鑑無碍 마음의 거울 밝아서 비침이 걸림 없으니

廓然瑩徹周沙界 확연히 비치어 항사세계에 두루 사무치도다.

60 萬象森羅影現中 만상삼라의 그림자 그 가운데 나타나고

一顆圓明非內外 한 덩이 두렷이 밝음은 안과 밖이 아니로다.

61 豁達空撥因果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하면

茫茫蕩蕩招殃禍 아득하고 끝없이 앙화를 부르리로다.

62 棄有著空病亦然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면 병이기는 같으니

還如避溺而投火 마치 물을 피하다가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도다.

63 捨妄心取眞理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取捨之心成巧僞 취사하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루도다.

64 學人 不了用修行 배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수행하나니

眞成認賊將爲子 참으로 도적을 아들로 삼는 짓이로다.

65 損法財滅功德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莫不由斯心意識 心. 意. 識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이라

66 是以 禪門 了却心 그러므로 선문에선 마음을 물리치고

頓入無生知見力 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가도다.

67 大丈夫秉慧劒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般若鋒兮金剛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68 非但能 外道心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早曾落却天魔膽 일찍이 천마의 간담을 떨어뜨렸도다.

69 震法雷擊法고 법의 우레 진동하고 법고를 두드림이여

布慈雲兮灑甘露 자비의 구름을 펴고 감로수를 뿌리는도다.

70 龍象 蹴踏潤無邊 용상이 차고 밟음에 윤택이 그지 없으니

三乘五性 皆惺悟 三乘과 五性이 모두 깨치는도다.

71 雪山肥 更無雜 설산의 비니초는 다시 잡됨이 없어

純出醍 我常納 순수한 제호를 내니 나 항상 받는도다.

72 一性 圓通一切性 한 성품이 두렷하게 모든 성품에 통하고

一法 含一切法 한 법이 두루하여 모든 법을 포함하나니

73 一月 普現一切水 한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一切水月 一月攝 모든 물의 달을 한 달이 포섭하도다.

74 諸佛法身 入我性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我性 還共如來合 나의 성품이 다시 함께 여래와 합치하도다.

75 一地 具足一切地 한 지위에 모든 지위 구족하니

非色非心非行業 색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행업도 아니로다.

76 彈指圓成八萬門 손가락 퉁기는 사이에 팔만법문 원만히 이루고

刹那 滅却三祇劫 찰나에 삼아승지겁을 없애버리는도다.

77 一切數句非數句 일체의 수구와 수구 아님이여

與吾靈覺何交涉 나의 신령한 깨침과 무슨 상관 있을건가.

78 不可毁不可찬 훼방도 할 수 없고 칭찬도 할 수 없음이여

體若虛空勿涯岸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도다.

79 不離當處常湛然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니

멱則知君不可見 찾은 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도다.

80 取不得捨不得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

不可得中 只?得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얻을 뿐이로다.

81 默時說說時默 말 없을 때 말하고 말할 때 말 없음이여

大施門開無壅塞 크게 베푸는 문을 여니 옹색함이 없도다.

82 有人 問我解何宗 누가 나에게 무슨 종취를 아느냐고 물으면

報道摩訶般若力 마하반야의 힘이라고 대답해 주어라.

83 或是或非人不識 혹은 옳고 혹은 그릇됨을 사람이 알지 못하고

逆行順行天莫測 역행. 순행은 하늘도 헤아리지 못하도다.

84 吾早曾經多劫修 나는 일찍이 많은 劫 지나며 수행하였으니

不是等閑相?惑 부질없이 서로 속여 미혹케 함이 아니로다.

85 建法幢立宗旨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를 일으킴이여

明明佛勅曹溪是 밝고 밝은 부처님 법 조계에서 이었도다.

86 第一迦葉 首傳燈 첫번째로 가섭이 맨 먼저 등불을 전하니

二十八代 西天記 이십팔대는 서천의 기록이로다.

87 法東流入此土 법이 동쪽으로 흘러 이 땅에 들어와서는

菩提達磨爲初祖 보리달마가 첫 조사 되었도다.

88 六代傳衣 天下聞 六代로 옷 전한 일 천하에 소문났고

後人得道何窮數 뒷 사람이 도 얻음을 어찌 다 헤아리랴.

89 眞不立妄本空 참됨도 서지 못하고 망도 본래 공함이여

有無俱遣不空空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니 공하지 않고 공하도다.

90 二十空門 元不著 二十空門에 원래 집착하지 않으니

一性如來體自同 한 성품 여래의 본체와 저절로 같도다.

91 心是根法是塵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兩種 猶如鏡上痕 둘은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음이라.

92 痕垢盡除光始現 흔적인 때 다하면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心法雙亡性卽眞 마음과 법 둘 다 없어지면 성품이 곧 참되도다.

93 嗟末法惡時世 말법을 슬퍼하고 시세를 미워하노니

衆生 薄福難調制 중생의 복 얇아 조복받기 어렵도다.

94 去聖遠兮邪見深 성인 가신 지 오래고 사견이 깊어짐이여

魔强法弱多怨害 마구니는 강하고 법은 약하여 怨害가 많도다.

95 聞說如來頓敎門 여래의 돈교문 설교를 듣고서는

恨不滅除令瓦碎 부숴 없애버리지 못함을 한탄하는도다.

96 作在心殃在身 지음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不須怨訴更尤人 모름지기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치 말지어다.

97 欲得不招無間業 무간지옥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거든

莫謗如來正法輪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아라.

98 檀林無雜樹 전단향 나무 숲에는 잡나무가 없으니

울密深沈師子住 울창하고 깊숙하여 사자가 머무는도다.

99 境靜林閒獨自遊 경계 고요하고 숲 한적하여 홀로 노니니

走獸飛禽 皆遠去 길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달아나도다.

100 師子兒衆隨後 사자 새끼를 사자 무리가 뒤따름이여

三歲 卽能大哮吼 세 살에 곧 크게 소리치는도다.

101 若是野干 逐法王 여우가 법왕을 쫓으려 한다면

百年妖怪虛開口 백년 묵은 요괴가 헛되이 입만 엶이로다.

102 圓頓敎勿人情 원돈교는 인정이 없나니

有疑不決直須爭 의심있어 결정치 못하거든 바로 다툴지어다.

103 不是山僧 逞人我 산승이 인아상을 들어냄이 아니요

修行 恐落斷常坑 수행타가 斷.常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염려함이로다.

104 非不非是不是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음이여

差之毫釐失千里 털끝만큼 어긋나도 천리길로 잃으리도다.

105 是卽龍女頓成佛 옳은 즉 용녀가 단박에 성불함이요

非卽善星 生陷墜 그른 즉 善星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짐이로다.

106 吾早年來積學問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쌓아서

亦曾討疏尋經論 일찍 주소를 더듬고 경론을 살폈도다.

107 分別名相 不知休 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 모르고

入海算沙徒自困 바다 속 모래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로 피곤하였도다.

108 却被如來苦呵責 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數他珍寶有何益 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뺐품?

109 從來 學虛行 예전엔 비칠거리며 헛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多年 枉作風塵客 여러 해를 잘못 풍진객(風塵客) 노릇하였도다.

110 種性邪錯知解 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 그릇됨이여

不達如來圓頓制 여래의 圓頓制를 통달치 못함이로다.

111 二乘 精進勿道心 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外道 총明無智慧 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112 亦愚癡亦小駭 우치하고도 겁이 많으니

空拳指上 生實解 빈 주먹 손가락 위에 실다운 견해를 내는도다.

113 執指爲月枉施功 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根境塵中 虛날怪 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도다.

114 不見一法 卽如來 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니

方得名爲觀自在 바야흐로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도다.

115 了卽業障 本來空 마치면 업장이 곧 공함이요

未了還須償宿債 마치지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빛 갚으리로다.

116 飢逢王膳不能飡 굶다가 임금 수라 만나도 먹을 수 없으니

病遇醫王爭得差 병들어 의왕 만난들 어찌 나을 수 있으랴.

117 在欲行禪知見力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火中生蓮終不壞 불 속에서 연꽃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도다.

118 勇施犯重悟無生 용시비구는 중죄 짓고도 남이 없는 법을 깨달으니

早是成佛于今在 벌써 성불하여 지금에 있음이로다.

119 師子吼無畏說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深嗟 頑皮? 어리석은 완피달을 몸시 슬퍼하는도다.

120 只知犯重障菩提 중죄 범하면 보리를 막는 줄만 알 뿐

不見如來開秘訣 여래께서 비결 열어 두심은 보지 못하도다.

121 有二比丘犯狀殺 어떤 두 비구 음행과 살생 저지르니

波離螢光 增罪結 우바리의 반딧불은 죄의 매듭 더하였고

122 維摩大士頓除疑 유마대사 단박에 의심을 없애줌이여

還同赫日消霜雪 빛나는 해가 서리. 눈 녹임과 같도다.

123 不思議解脫力 不思議한 해탈의 힘이여

妙用恒沙也無極 묘한 작용 항하사같아 다함 없도다.

124 四事供養 敢辭勞 네 가지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 사양하랴.

萬兩黃金 亦銷得 萬兩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도다.

125 粉骨碎身未足酬 뼈가 가루되고 몸이 부숴져도 다 갚을 수 없나니

一句了然超百億 한 마디에 요연히 백억 법문을 뛰어 넘도다.

126 法中王最高勝 법 가운데 왕 가장 높고 수승함이여

河沙如來同共證 강 모래같이 많은 여래가 함께 증득하였도다.

127 我今解此如意珠 내 이제 이 여의주를 해설하오니

信受之者皆相應 믿고 받는 이 모두 상응하리도다.

128 了了見無一物 밝고 밝게 보면 한 물건도 없음이여

亦無人兮亦無佛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129 大千世界 海中 대천세계는 바다 가운데 거품이요

一切聖賢 如電拂 모든 성현은 번갯불 스쳐감과 같도다.

130 假使鐵輪 頂上旋 무쇠바퀴를 머리 위에서 돌릴지라도

定慧圓明終不失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끝내 잃지 않는도다.

131 日可冷月可熱 해는 차게 하고 달은 뜨겁게 할지언정

衆魔不能壞眞說 뭇 마구니가 참된 말씀 부술 수 없도다.

132 象駕觴嶸漫進途 코끼리 수레 끌고 위풍당당히 길을 가거니

誰見螳螂 能拒轍 버마재비 수레길을 막는 걸 누가 보겠는가.

133 大象 不遊於兎徑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노닐지 않고

大悟 不拘於小節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나니

134 莫將管見謗蒼蒼 대통같은 소견으로 창창히 비방하지 말라.

未了吾今爲君決 알지 못하기에 내 이제 그대 위해 결단해 주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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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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