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혜스님이 입실했던 제자들이 물러간 후 한가이 앉아있다가 갑자기 말하였다.
“요즘 납자들은 지견(知見)과 정해(情解)가 많다. 쓸모없는 말, 긴 이야기를 기억해서 그 속에서 답을 구하는 것은 마치 손에 값을 따질 수 없는 마니주(摩尼珠)를 쥐고 있다가. 어는 누가 손 안에 있는 게 무엇이냐고 하면 갑자기 그 구슬을 버리고 흙덩이를 집어올리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건 멍청이다. 그렇게 참구한다면 당나귀 해가 되도록 참선을 해도 깨치지 못할 것이다.”
스님이 하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 내게는 사람들에게 줄 법이 없고 다만 사건에 따라서 판결을 내려줄 뿐이다. 비유컨대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하는 유리병을 가지고 오면 내가 한 번 보고는 너를 위하여 곧 유리병을 깨뜨려 버릴 것이다. 네가 그대로 오는 것을 보면 나는 너의 두손을 잘라 버릴 것이다. 이 때문에 임제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라고 말한 것이다.
말해 보아라. 선지식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가를 살펴 보아라. 그것이 무슨 도리인가를. 그런데 요즘 납자들은 공부를 할 때 이것을 깨닫지 못하니,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그것을 밝혀 나가고자 한다면 이렇게 해도 안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되며, 이렇게 하거나 하지않거나 모두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느가?
너는 한마디 말[轉語]을 가지고서 이를 밝혀 나가려는가? 영원히 그것을 밝히지 못할 것이다. 옛 사람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러나 너는 단도직입적인 곳으로 가려하지 않고 그저 분명하게 밝히려고만 드니, 이래서 도리어 깨침이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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