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엇인고 ?' 화두하는 법


(적멸성불록의 서문을 번역발췌한 글이라고 함. 번역상의 표현 및 문법이 고루하여 가능한 부분만 현대 어법에 맞게 고침. 그 과정에서 의미의 변화가 없었기를 바람. 그리고 두뇌감각일점 운운하는 것은 공부초기의 개인적인 체험이며 일반적인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됨.)

몸은 죽어 흩어져 각기 원소로 돌아가고 그 일체 원소는 곧 이 지구이며, 이 지구는 우리 사람과 같이 의식이 없으니, 이 항상 아는 의식은 지구에서 온 것이 아니로구나.

그러면 항상 불매하여 아는 이놈은 무엇인고? (이 의심이 화두임)

처음에는 이론으로 화두를 캐는데 결국 이론으로 캐어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르는 간절한 의심을 망상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빼앗아 간다.

빼앗기면 또 다시 이론으로 위에 쓴 바와 같이 되풀이 하면 반드시 지극한 의심이 잡히게 된다. 이와같이 처음에 몇번이고 반복하다가 긴급하게 두뇌의 감각으로 의심체를 증험하여 보면 의심체라는 놈이 별 것이 아니고 단지 두뇌 좌우에 감각기운 일점이니 이론으로 캐는 것을 그만두고 단지 혀신경으로 이 무엇인고만 하면서 두뇌좌우 감각기운 일점만 들라.

이렇게 하는 중에도 곧 망상 잡념이 감각기운 일점을 빼앗아 간다.

이렇게 빼앗기면 이론으로만 캐지말고 이 무엇인고(무자화두에서는 어째서 또는 왜)만 하라. 그리만 하여도 두뇌좌우 감각기운 일점이 잘 일어날 터이며, 망상에게 빼앗기더라도 또 이상과 같이 반복하되 감각기운 일점에 육체의 어디나 힘이 가도록 할지니라.

감각기운 일점을 전력을 다하여 잡념에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할지니 힘을 써서 감각기운을 보호하고 망상에게 빼앗기더라도 또 이상과 같이 할지니 그러다보면 보호하는 감각기운 일점이 어덴가 밀려나 가는 것을 알게 되느니라.

이렇게 된 후에는, 육체의 힘을 다하여 내어 밀며 가정력하여 힘을 더하고 또 더하라. 그렇게 하기를 약 20여일이면 반드시 나가던 감각기운 일점이 나가지를 않고 멎게 되느니라.

멎었더라도 내어밀어 볼지니 암만내어 밀어도 나가지를 않게된다.

이 나가지 않는 곳에서 약 일주일 가량만 더 내어밀어 정진하다가 일체 마음을 쉰 가운데 진정코 단좌하여(이때가 되면 머리 속이 쇄락한 것이 가을 하늘과 같아 냉냉하며 차다.) 힘을 더하여 내어밀어도 보고 또 그 힘을 떼어도 보라.

이상하게 두뇌 좌우에 진리아니면 안되게 되어 있는 힘이 붙을지니 이 기틀의 힘을 알고, 반드시 힘을 더하여 내어밀지도 말고 떼지도 말라.

단지 정심단좌하여 밀지도 말고 떼지도 말며 모름지기 자연히 놓아 쉴지니 두뇌좌우의 기틀에 힘을 너무 떼어도 힘이 더들어 붙고 너무 힘을 써도 더 들어붙나니 너무 힘을 쓰지도 떼지도 말며 단지 자연히 쉬여 두뇌힘이 점점 덜 들어 붙도록 공을 드릴지라.

그 힘을 스승에 의지하여 잡념이 들어오나 엿보라.

잡념에 빼앗기면 단지 두뇌좌우 기틀의 힘에 응할지며, 자연하여 쉬일지며, 망상이 들어오나 엿볼지니라.

곧 두뇌좌우에 힘은 더 들어붙나니 이것이 곧 일개정절이니라,

점점 힘을 더는 곳이 점점 힘을 얻는 곳이며 극히 힘을 던 곳이 문득 힘을 얻는 곳이니라.

[1] 이때부터는 육체에 힘을 놓아버리고 자연스레 쉬도록 하라.

이렇게 하면 자연 눈앞이 아른거리게 되는데 비유하면 문틈의 햇빛에 가는 티끌먼지가 일어남과 같아서 어지럽게 아른거리며 작고 가는 것이 혹하여 맺힘이니라.

바람은 멎어도 파도는 오히려 높이 일고 진리는 나타나도 (정력) 생각은 오히려 잠겨 용이하게 물리쳐 제하지 못한다.

여하튼 내 마음을 잃어버려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더라도, 곧 일체를 관계말고 역등하여, 없고 어두운데 향하여 쉬어 들어갈지니 이렇게 몇 달 익히면 의식이 전혀 행하지 않고 내가 참 인간에 있나하는 생각이 나며 사실 인간에 있는 줄 잘 모르나니라.

이것이 이개정절이니라.

[2] 이 때는 단지 일체를 모르며 일체를 알지 않는 것을 위주로 하여 뭇 많은 여우가 나무위를 알지 못하고 거꾸로 올라가듯 공부하며 유쾌하게 마음세를 갖고 오로지 놓아 자연할지니 놓아 자연하면 몸이 가서 머무르는데가 없음이요, 향한즉 등지고 구하면 잃어버리나니 기틀을 멈추고 생각을 억지로 끊으면 오히려 멀어지게 되느니라.

조롱하여 가고 조롱하여 오며 졸아가고 졸아오며 가늘게 인연따라 잔질하면 자연 끊어지지 않고 멎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들물이 가을을 증험함과 같아서 나가지 않아도 스스로 나가고 쉬지 않아도 스스로 쉬며 순풍에 돛단배와 같나니라.

[3] 이 때 은연중 문득 정신을 번쩍차리고 가다듬으면 이때에 경계가 나타나나니 앞에 불투명턴 경계가 사라지고 안경을 벗음과 같고 가렸던 안개가 없어짐과 같나니라.

과거를 의지하여 부동하게 잔질하며 날이 오래고 달이 깊으면 작고 가는 흐름이 아주 가늘게 붙어서 흐름이 쉬어 없어지고 능소가 절대대하여 오직 참하나의 몸이 이미 있을 뿐이니라. 이것이 삼개정절이니라.

맑고 맑아 크게 비었고 밝고 역역 또렷또렷 하나니 비유해 맑은 하늘에 한 달이 홀로 밝았으나 오히려 계수나무 있음과 같아서 달의 몸이 그늘져 가리는 고로 그 빛이 제대로 밝지 못하나니 차시 정중에서 아무리 익혀야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움직이는 요중에서 한 번 시험하면 미세의 잠재함을 떠난 때를 반듯이 증험하리라. 그 증험을 잘 응용하여 대발용맹 정체하여 공을 드리면 자연히 달 안에 계수 나무를 깍아 끊어버리게 된다.

다시금 밝은 빛을 더 안달하면 이씨재상이 술을 마셨는데 장재상이 취하게 되며, 넓은 하늘 만 리가 본래 달이로다. 지극히 작고 가늚의 밝지 못한 혹업을 끊어 물리치면 밝은 거울이 마땅히 대를 작하여 거울에 거울이 비침과 같으리라.

본성의 밝음이 스스로 비추고 둥글게 밝아, 물건과 나의 근원의 참 성품이 두루두루 충만하여 일만 형상이 몰록 나타나, 맑고 맑은 큰 바다에 넓게 벌어진다.

벌어진 인(도장)과 같아서 일체 세간을 떠난 법의 일을 모르는 바가 없고 못 비추는 곳이 없으며 응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라.

이 것이 곧 여래선 이니라.

(곧 여래선을 증명해 깨달은 바니라) 진리는 몰록 깨달었으나 이를 깨달음의 행으로 녹일지어니다.

일은 몰록 제하여 지지 아니하므로 이것을 깨달음으로 다음에 다할지니 단 범부의 정을 다 녹일지언정 별다른 성현의 지견으로 제할바는 아니니라.

육근(곧 몸의 일체감각)이 경계(깨달은바)를 섭하여 인연을 쫓지않음이 곧 정이요 마음과 경계가 함께 공하여 비춤에 혹함이 없음이 혜이니 맑음이 더하여지는 곳을 향하여 정과 혜를 닦아 순전하고 완전하게 오래도록 익히며 항상 비춰봄을 잊니 아니하면, 자연 망령된 습기와 자기도 모르는 허물의 업이 다 녹아 남음이 없느니라.

깨달아 아는 바의 지견을 다 드러내 놓아버리고, 고요히 알며 운수대로 맡겨 절대 집착치 말지니 머무는 바가 없이 생하는 그 마음으로 응하여, 마음이 머물었느냐 마음 자리하고 경계냐 경계 자리하여 단지 돌하면 돌, 나무하면 나무할지며 절대 딴 것을 봄이 없이하여, 때가 있음에 마음과 경계가 서로 대하여도 마음이 경계를 취함이 없고 경계가 마음에 임하지 못하나니 오랜 겁의 어둠과 작고 가늚의 혹업이 녹아 다하여 남음이 없으리라.

닦음도 없고 증명함도 없으며 봄도 살핌도 없어 닦음 없음으로 닦고 행하여, 조금도 수고로움이 없는 마음의 힘이 위지 닦음이니 본 마음이 아님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어 비어 밝음이 스스로 비춰 스스로 머무르는 바가 없는 마음이 신령하게 앎이 어둡지 아니하여 목석과 같지 않고 스스로 신해하여 아나리라.

삼명육통 일체가 본래 갖추어져 족한바라 해가 지고 달이 뜨며 비가 오고 구름이 다니게 함과 능히 정하고 능히 움직이며 혹 들어 가고 혹 나옴이 곳곳에 걸림없이 자재하여 도에 걸림이 없나니라.

이것이 통투 조사선이며, 대장부 일을 마친 바이니라.

여래선은 반드시 요중에서 익혀야 무명혹업을 녹이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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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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