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림성사 서[敍]


내가 총림에 몸을 담은 지 거의 30년 동안 당대의 큰스님들을 만나본 일이 많았으나 세상을 떠나 단구산(丹丘山) 봉우리에 문을 닫고, 나날이 초목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러나 옛 버릇을 잊지 못하고 조는 틈에 손에 닿는대로 케케묵은 옛 상자 속을 뒤지다가, 마침 강서(江西) 효영 중온(曉瑩仲溫)스님의 저서 `나호야록(羅湖野錄)" 한 질을 찾았다. 첫머리를 펼치니 무착(無着)스님의 서가 있었다.


"옛 철인들이 도에 들어간 숱한 기연(機緣) 중에 선서에 기재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그 허물은 당시 뛰어난 스님들이 편집하면서 빼먹었기 때문이다. 이는, 종문(宗門)을 보호하고 불법을 넓히려 하는 마음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급기야는 훌륭한 분들을 보고서 자기도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공허한 탄식만을 더해 주었다."


이 말을 자세히 음미해 보니, 참으로 우리처럼 게으르고 오만스러운 자의 병폐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평소 대중으로 있을 때에 보고 들었거나, 선배 또는 근세 스님들에게서 본받고 기록할 만한 말들을 더듬어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

책이 완성되어 무봉(?峰:育王山)의 불조(佛照:德光禪師, 經21~1203) 노스님에게 올렸더니, 이를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시자 도권(道權)에게, 이는 참으로 우리 종문의 훌륭한 일[盛事]이라면서 어찌 목판에 새겨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그래서 이 책을 “총림성사(叢林盛事)”라 이름하였다. 나를 알아주거나 나를 허물하는 것이 여기에 있으니 비웃지말기를 바란다.


정사(丁巳) 경원(慶元) 3년(經97) 8월 15일 도융(道融)서

1. 황룡스님을 참방하다 / 정대경(程大卿)


정대경(程大卿)이 혜남(黃龍慧南:1001~1069)선사를 찾아뵙자, 혜남스님은 그에게 `태어난 인연[生緣:黃龍三關 중 하나]'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였는데, 법창(法昌倚遇:1005~1081)스님이 어느 날 혜남스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그 자리에서 번뇌망상을 떨쳐주지 않소?"

"언제 사족이라도 그렸단 말인가? 그 스스로가 단박에 깨닫지 못했을 뿐이오."

"스님은 그를 어떻게 가르치시렵니까?"

"생강을 깨물고 식초를 빨게 하겠소."

"속된 중이 또 저러는구나."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 말에 법창스님이 불자(拂子)를 뽑아들고 황룡스님을 치자, 황룡스님이 "이 늙은이가 이처럼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나!"라고 하니, 법창스님은 그만두었다.

Posted by 붓다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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