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조동의 종지를 깨친 분 / 석창 법공(石窓法恭)선사
석창 공(石窓法恭:1102~1181)선사는 총림을 두루 참방하고 오랫동안 황룡 법충(黃龍法忠:1084~1149)도인에게 의지하다가 뒷날 굉지(宏智正覺)스님에게 귀의하였다. 정강(紛康:1126)에 호상(湖湘)에서 동월(東越)로 돌아갈 때 법충스님은 송을 지어 그를 전송하였다.
모래섬에 놀던 그 옛날 부질없이 회상하며
손꼽아 헤아려보니 어느덧 40년
그대 석창사에 가거든 조용히 묻게나
이 많은 풍월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를
閑思昔日戱沙洲 屈指于今四十秋
君到石窓閑借問 許多風月付誰收
법공스님은 월주(越州)보은사(報恩寺)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갔다가 뒤에 서암사(瑞巖寺)로 옮겨와서 스님의 도는 크게 펼쳐졌다. 스님은 괴로움을 이겨가며 학인을 가르쳤고 베옷과 나물밥으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면서 작고 큰 일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몸소 하여 총림의 질서를 갖추니, 납승들은 그의 덕망을 우러러 마음 깊이 굴복하였다. 한번은 불탄절에 이런 송을 지었다.
오천축국에서 쏜 한가닥의 쑥대 화살이
중국의 백만병사를 휘저어놓았네
운문의 바른 명령 행하지 못하면
자칫 저울눈금을 잘못보게 되리라
五天一隻蓬蒿箭 攪動支那百萬兵
不得雲門行正令 幾乎錯認定盤星
총림에서 이 송이 널리 애송되었다.
철백두(徹白頭:了堂思徹)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삼구(三衢)사람이며, 법공스님과 함께 굉지스님 문하로서 절개있고 결백하여 세속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한번은 태백사(太白寺)를 찾아갔는데 묘희스님은 그를 보고 매우 준수한 인물이라 하여 마음 속으로 기뻐한 나머지 꾀를 써서 옥궤산(玉山)을 지나도록 유도하였지만 그는 소신을 바꾸지 않고 마침내 천동사(天童寺)노스님에게 귀의하였다.
건도(乾道:1165~1173)연간 초에 법공스님이 철백두스님을 자기의 제자로 생각하여 몸소 명주(明州)보은사(報恩寺)의 주지에서 물러나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주지된 지 2년만에 사방의 훌륭한 스님들이 모두 귀의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굉지스님의 법통을 이었다. 이 때문에 법공스님은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였지만 철백두스님 또한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 후 무주(?州) 화장사(華藏寺)의 주지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으나 길을 떠나려는 즈음에 입적하였다.
임종시 유게(遺偈)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이 한마디에는
다시는 회호(回互)가 없도다
달은 차가운 연못에 떨어지는데
저녁노을은 옛 나루터에 아득하여라.
當陽一句 更無回互
月落寒潭 烟迷古渡
참으로 동상(洞上:曹洞宗)의 종지를 깨친 스님이지만 안타깝게도 장수를 누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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